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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천외 병역회피…경음기 귀에 대 일시적 청력마비 적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병역 면탈자들이 일시적으로 청각 기능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용한 자전거 경음기 [병무청 제공]

병역 면탈자들이 일시적으로 청각 기능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용한 자전거 경음기 [병무청 제공]

2011년 입대를 앞둔 이모(32)씨는 군대에 안 갈 수 있는 ‘비법’을 찾아냈다.

비법은 간단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전거 경음기(클랙슨ㆍ일명 빵빵이)를 갖고 놀길 좋아했다. 경음기를 귀에 갖다 대고 울리면 먹먹해지고 일시적으로 안 들린다는 걸 알게 됐다. 이씨는 병원 주차장에 차를 댄 뒤 그 안에서 경음기를 양쪽 귀에다 20분 간격으로 두 번 정도 울렸다. 그랬더니 일시적으로 청각이 마비됐다. 병원에서 청력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서를 받아 청각 장애인으로 등록했다. 물론 나중엔 청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병무청의 신체등급 기준에 따르면 두 귀의 청력을 각각 70㏈ 이상 잃은 사람은 6급에 해당해 병역판정검사(신체검사) 없이 면제판정을 받는다.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을 해야만 간신히 들을 수 있는 정도다.

자신이 직접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이씨는 이 비법을 팔기로 마음먹었다. 군대에 가고 싶어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적게는 1200만원에서 많게는 5000만원까지 받은 뒤 비법을 전수했다. 이씨는 이들에게 차 안에서 자전거 경음기나 응원용 에어 혼(나팔)을 울리면 청각장애 진단서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도구들도 직접 건네줬다. 이렇게 해서 이씨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1억300만원을 벌어들였다.

이씨에게서 비법을 산 사람들 중에는 전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 A(31)씨와 인기 유튜버(유튜브에 정기적으로 동영상을 올리는 사람) 김모(25)씨가 있다. 김씨는 게임 동영상이 전문이며, 그의 채널 구독자 수가 100만명이 넘는다.

병역 면탈자들이 일시적으로 청각 기능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용한 에어혼 [병무청 제공]

병역 면탈자들이 일시적으로 청각 기능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용한 에어혼 [병무청 제공]

이씨와 인터넷 수입차 동호회에서 만난 A씨는 2015년 1500만원으로 이씨의 비법을 산 뒤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다. 반면 김씨는 5000만원을 주고 이씨가 알려준 대로 시도했지만, 청각이 일시적으로 악화하지 않아 청각장애인으로 등록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입대를 한 김씨는 정신질환이 있는 것처럼 진단서를 꾸며 귀가조치를 받았다. 김씨는 이후 병역을 피하려고 시도하던 중 적발됐다.

A씨와 김씨는 “선수 생활이나 방송을 계속해 돈을 벌기 위해 이씨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자신의 지인들에겐 무료로 비법을 알려줬다.

이 같은 범죄는 2017년 12월 국민신문고의 제보 덕분에 세상에 드러났다. 청각장애로 군 면제를 받은 사람이 있는데, 실제로 청력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병무청은 이씨 등 부정한 방법으로 병역을 면제받거나 면제를 시도한 8명을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고 19일 밝혔다. 또 이씨에게 병역면제 희망자를 소개한 이씨의 동생과 선배 등 3명을 적발했다. 이씨 자신을 포함해 모두 6명은 실제 군대에 안 가게 됐고, 2명은 병역면탈을 시도한 혐의다.

병무청은 이번 병역면탈을 일시적 청각 마비를 이용해 병역을 회피하는 신종수법이라고 설명했다. 또 2012년 이후 브로커가 개입한 첫 사례라고 덧붙였다.

이씨 등이 법원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될 경우 병무청은 이들에 대한 병역처분 자체를 취소할 예정이다. 그러면 이씨 등은 다시 병역판정검사를 받고, 그에 따라 입대 여부가 결정된다. 또 보건복지부에 이씨 등의 허위 청각장애 등록 사실을 통보했다.

병무청은 또 2011년부터 청각장애를 이유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1500여 명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이들의 과거력과 보청기 착용 여부를 확인해 병역면탈 사례를 추가로 적발하기 위해서다.

이철재 ·이근평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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