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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정치 인사이드] 지지율 푸틴 70-노무현 20% 의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집ソ퓽?모스크바 크렘린 궁 안에 있다. 푸틴이 바람을 쐬러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면 커다란 글씨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궁앞 레닌도서관 옥상에 있는 광고판이다.

‘SAMSUNG TV MOVILE NETWORK’.

푸틴뿐이 아니다. 한해 크렘린을 찾는 전 세계 수백만 관광객이 궁을 나서면서 맨 처음 만나는 광고판이 이것이다. 세계인에 대한 효과 면에서 보면 이 광고판은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에 있는 어떤 광고판보다 강렬할 것이다. 푸틴은 이 광고판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지금은 사라진 소련연방은 1990년 동방의 작은 국가 한국과 수교하면서 30억 달러를 빌려쓰는 수모를 겪었다. 현금이 없어 소련제 군사·과학장비로 갚았다. 정보부(KGB) 고위 관리였던 푸틴은 대국 러시아에 대한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하다. 아마도 푸틴은 한국과 엮였던 이런 역사를 부끄러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게다. SAMSUNG 간판을 보면서 그는 대국 러시아를 부활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다지지 않을까.

국제한민족재단(이사장 정재윤)은 최근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제7차 세계 한민족 포럼을 열었다. 주제 중 하나는 한-러 협력이었다. 포럼에 참가한 필자 제1의 관심은 푸틴이었다. 2004년 3월 푸틴은 71.3% 지지로 재선됐다. 이미 4년의 시험을 거친 대통령으로서는 경이로운 지지율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금도 지지율이 70% 안팎에서 고공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틴이 재선될 때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을 당해 대통령 관저에서 은둔하고 있었다. 탄핵에 반대한 국민은 열린우리당에 표를 몰아주었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로켓처럼 치솟았다.

그러나 2년 뒤 푸틴과 노 대통령의 처지는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졌다. 푸틴에 대한 러시아인의 애정과 신뢰는 변함이 없다. 아니 한술 더 떠 푸틴의 3선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고치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푸틴은 며칠 전 개헌 가능성에 대해 “그런 일은 없다. 나는 그만둘 것”이라고 못박았다. 국민은 그런 푸틴을 더 좋아하게 됐다. 반면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20%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한민족 포럼에 참가한 러시아인과 고려인 학자들에게 기자는 ‘푸틴 70%’의 비결을 물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푸틴의 인격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강조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회원인 김려춘씨는 “푸틴은 말을 조리있게 하고 언행에 경박한 실수가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 민족부에서 오랫동안 공무원생활을 한 칸 미하일은 “러시아인은 푸틴의 전임자 옐친에 대한 끔찍한 기억이 있다. 그는 술에 취해 춤을 추고 말을 함부로 해서 러시아 대통령의 품위를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옐친은 자신의 품위 실종도 문제였지만 이른바 ‘옐친 패밀리’라 불리는 측근들의 부패·무능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미하일은 “푸틴이 자신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인맥을 데려올 때 국민은 옐친 생각이 나서 걱정했다. 그러나 젊은 그들은 부패가 없었고 능력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의 체통이 아무리 든든해도 경제가 흔들리면 지지율은 떨어질 것이다. 푸틴은 운이 좋게도 호경기를 타고 있다. 유가가 급등하면서 세계 최대 산유국 러시아의 국부는 크게 늘어나고 있다. 푸틴은 체첸 반군의 목을 죄고 에너지를 무기로 우크라이나·그루지야 등 옛 위성국을 압박하고 있다. 국민은 이런 푸틴을 보면서 ‘대국 러시아’에 대한 향수를 달래고 있다.

<김진 중앙일보 정치전문기자·ji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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