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비판에 귀막은 여성연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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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시민단체가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다. '관변 단체화'라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정부나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이 일부러 정부와 거리를 두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30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은 중앙일보에 보도자료를 보냈다. 이날 오전 본지(3면)에 보도된 '한국여성단체연합, 60억 빌딩 건립추진위에 정부 고위인사 대거 참여'라는 기사에 대한 반박자료다.

여연은 "건립추진위에 참여한 '정부 고위인사'는 여성운동에 오랫동안 참여한 여성운동가 출신으로, 센터 건립에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리가 있다. 여연 대표 중 다수가 정계로 진출한 게 사실이다. 한명숙 총리,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 열린우리당 이미경.이경숙 의원 등이 여연의 공동대표였다. 그 밖에도 여연의 회원에 가입된 단체 대표에서 여러 명이 장관급 또는 차관급이 됐다.

일부에서 "시민단체인 여연이 권력화 혹은 관변화된 게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데 여연은 그런 지적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여연은 "그것은 여성운동의 중요한 성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익단체와 이익단체를 구별하는 잣대는 '그 단체가 누굴 위해 일하느냐' 하는 것이다.

1987년 부천 권양 성폭행 사건이 터진 이후에 여연은 출범했다. 그 후 19년간 여연이 여성의 인권과 권익 향상에 기여한 공은 지대하다. 동시에 '월 90만원의 열악한 임금을 받고 일하는' 젊은 여성 활동가들의 열정을 폄하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동안 쌓아올린 공익성과 신뢰가 있다는 것과 기업 등으로부터 거액을 후원받는 걸 가볍게 생각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여연의 대표와 간부들이 정부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건 여성운동에 대한, 그리고 시민운동에 대한 국민적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이 여연을 지원한 건 '시민단체'였기 때문이다. 행사 한번 열면 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줄줄이 참여하는 그런 여연이었다면 국민은 아마 생각을 달리했을 것이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더 이상 소금이 아니다. 그런 진실을 여연 관계자들이 헤아려 주길 바란다.

문경란 여성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