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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수퍼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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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수퍼맨은 1934년 미국 만화로 탄생했다. 경제 공황기 미국인에게 꿈과 용기를 준 수퍼맨은 이후 라디오 드라마와 소설.애니메이션.TV시리즈.뮤지컬로 옮겨졌다.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영화는 1978~87년 총 네 편이 나왔다.

수퍼맨은 '스파이더맨' 등 각종 '맨'시리즈와 '원더 우먼' 등 수퍼 히어로 무비의 원조가 됐다. 움베르토 에코는 수퍼맨을 "산업사회 개인들이 가진 자립의 열망과 권력에 대한 꿈을 한 몸에 체현하면서, 관객이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영웅"이라고 풀이했다.

특히 영화 속에서 수퍼맨은 미국인이 주도한 세계 평화를 이끄는, 아메리칸 영웅의 대표 아이콘이 됐다. 그만큼 백인 남성 중심주의, 미국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수퍼맨.초영웅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수퍼맨의 여정은 조셉 캠벨이 숱한 신화와 종교.전설 속에서 분석한 영웅담과 똑같다. "비정상적인 탄생, 어린 시절의 고난, 조력자와의 만남, 기적적인 권능의 획득, 귀환"의 여정이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왜 그토록 수퍼맨에 열광할까. 최근의 분석은 200년 남짓 역사가 짧고 건국 신화가 없는 미국인들에게 수퍼맨이 자국 신화 속 영웅이 되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퍼맨은 크립톤 행성의 지도자인 아버지에 의해 지구에 보내지고 지구를 구한다. 외계에서 온 이방인이 불세출의 영웅이 되는 구도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이주해온 뒤 세계 평화의 수호자를 자임하게 된 미국 사회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예수의 이미지와도 닮았다.

19년 만에 새 영화 '수퍼맨 리턴즈'가 나왔다. 새 영화는 메시아 수퍼맨을 더욱 강조했다. 심지어 '구세주(saviour)'라는 호칭을 쓰고 예수와 똑같은 상처를 입는다. 악당은 수퍼맨의 권능을 훔쳐 야욕을 불태우다가 저지당한다.

이 '돌아온 수퍼맨'은 미국인들이 여전히 수퍼 파워를 갈망하지만 그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심지어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것이어야 함을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수퍼맨 리턴즈'는 9.11 이후 심리적 충격과 따가운 세계 여론 속에 도덕적 정당성을 찾고 싶어하는 미국인의 자기인식을 보여준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도 수퍼맨을 "9.11 이후 혼란한 세상에 위로와 안식을 주는 존재"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선하고 희생적이며 강한 권력에 대한 희구다. 물론 이는 지금 미국인들만의 희구는 아닐 것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