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나무가 바람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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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나무가 바람을'-최정례(1955~ )

나무가 바람을 당긴다

이 끈을 놓아

이 끈을 놓아

끌려가는 자세로 오히려

나무가 바람을 끌어당길 때

사실 나무는 즐겁다

그 팽팽함이

바람에 놓여난 듯

가벼운 흔들림

때론 고요한 정지

상처의 틈에 새 잎 함께 재우며

나무는 바람을 놓치지 않고

슬며시 당겨 재우고 있다

세상 저편의 바람에게까지

팽팽한 끈 놓지 않고



바람과 나무는 원인과 결과, 지배와 피지배, 작용과 반작용, 부재와 흔적 따위의 관계다. 사람들은, 아니 과학은 그렇게 규정한다. 하지만 시인의 눈은 다르다. 시인은 바람과 나무의 관계를 역전시킨다. 나무가 바람을 당긴다! 세상이 확, 달라 보이지 않는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팽팽해지지 않는가. 시와 시인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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