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 견인차 '수출'이 식어간다…"비(非)수출 기여율 13%p 높여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이 '수출주도형 경제'에 치우친 정책에서 벗어나 소비 활성화 등 수출을 보완할 새로운 엔진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분석이 국책 연구기관에서 나왔다.

10일 산업연구원 '수출주도형 성장, 지속 가능한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경제는 경제개발 이후 40여년간 수출이 경제성장률(GDP 성장률)보다 약 2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실제로 기간별 수출 증가율을 보면 수출 주도형 경제 시기였던 1970~1999년 수출 증가율은 17.1%, GDP 성장률은 8.8%로 우리 경제를 이끌었다.

그러다가 2000~2013년에는 각각 10%, 4.4%로 차이가 좁혀졌다. 2014~2018년에는 2.1%, 3%로 오히려 역전됐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강두용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5년간 실질 수출증가율은 이전 기간의 5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면서 "2014~2017년은 통계작성 이후 최초로 4년 연속 수출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았던 시기"라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지난해의 경우 수출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4%의 증가율을 보였지만 반도체 특수와 선·후진국 경기의 동반 회복이란 특수성이 있었다. 결국 2018년 같은 증가세가 지속할지는 불확실하다는 게 산업연구원의 분석이다.

이처럼 2014년 이후 수출증가세가 낮아지면서 수출주도형 성장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강 연구원은 "수출 부진은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고 글로벌 교역 둔화가 주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전 세계교역 증가율은 세계 경제성장률보다 약 2배 높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성장률과 같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반(反)세계화 여론의 확대, 이에 따른 보호무역 기조, 미·중간 헤게모니(주도권) 분쟁 등은 세계교역 증가를 한층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일각에선 20세기 초 영국과 독일의 헤게모니 분쟁이 1차 세계화의 종언을 가져온 것처럼 미·중 분쟁이 본격적인 탈세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세계 무역에 직접 영향을 받는 우리 수출의 저성장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강 연구원은 "설사 한국의 수출주도형 성장이 지속할 수 있더라도 수출의 성장기여율 자체가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향후 한국 수출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교역 증가율 전망치 수준(2019~2023년 연평균 3.9%)의 증가 추세를 유지한다면 수출이 엔진 역할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수출의 성장기여율은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따라서 수출이 아닌 비(非)수출 부문의 성장기여율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은 한국 경제가 잠재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비수출부문 성장기여율이 13%포인트 내외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강 연구원은 "투자주도 성장의 경우는 실현 가능성·지속 가능성이 작다"며 "전임 정부는 주택투자 부양을 통해 수출 부진을 보전하는 전략을 취했지만, 이는 부동산 경기과열, 가계부채 급증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궁극적으로 소비의 활성화를 통해 수출의 성장기여 하락을 보전하는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결국 앞으로 한국 경제의 키는 민간소비에 달렸다는 뜻이다. 한국의 민간소비는 GDP 성장률을 밑도는 낮은 증가세를 보여왔다. 2000~2018년 민간소비 증가율은 GDP 성장률보다 연평균 0.8%포인트 낮았다.

민간소비를 늘릴 여지는 있을까. 이에 대해 강 연구원은 "한국은 민간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가장 낮은 국가다. 경상수지도 흑자기조여서 앞으로 소비 확대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민간소비 대 경상 GDP 비율은 48%다. OECD 전체 평균보다 7~10% 포인트 낮다. 또 한국은 2015~2017년 연평균 GDP 대비 6.6%에 달하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지속 중이다. 이 역시도 소비 진작의 '실탄'이 될 수 있다.

다만 고용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민간 소비를 깨우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강 연구원은 "고용과 가계소득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는 점에서 일자리 창출 노력이 가계소득 활성화를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짚었다.

이 밖에 산업연구원은 불리한 세계 교역환경 속에서 수출둔화 폭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도 중요하다며 ▶제품 고도화를 위한 혁신 노력 강화▶상대적으로 교역환경이 양호한 인도·아세안 시장 확대▶미·중 무역마찰을 역(逆)으로 활용한 양국 시장 공략 등을 제시했다.

세종=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