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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이 아닌 「주체사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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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반도의 분단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외적 조건이 상당히 성숙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39번째 6·25를 맞았다. 이 날을 맞아 우리 겨레 모두의 마음속에는 그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 위해 남북한간의 긴장이 완화되고 그 바탕에서 통일의 길이 열리기를 기원하는 바람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바람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사회 안에서 일고 있는 6.25에 대한 평가의 혼미가 극복되고, 또 북한 당국자들의 대남 정책이 평화 공존 정책으로 바뀌어야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급진파 운동권 안에서 6·25에 대한 수정주의적 해석을 맹신하는 풍조가 일고, 심지어 김일성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에 동조하는 세력이 상황의 진실을 왜곡·혼란시키고 있는 현실은 개탄할 일이다.
이와 같은 운동권의 움직임은 김일성이 50년 6월에 무력으로 시도했던 통일 정책을 남한사회의 내부교란을 통해 이루어 보려는 북의 의도에 동조하는 것과 다름없는 현상이다.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될 것이다.
일부 운동권이 지지하고 있는 주체사상은 통일의 바탕이 될 수 없는 실패한 이념이다.
오늘날 북한이 겪고 있는 경제적 낙후성과 정치적 억압 및 국제적 고립에서 그것은 실증되고 있다. 또 북한의 경직된 전체주의는 북한의 맹방인 다른 공산국에서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럼에도 학생 운동권과 출판계 일부에선 주체사상을 비판 없이 받아들여 그것이 민족주의적 사상인 것처럼 대접하고 있다. 그것은 일부 대학가에서 김일성 우상화로 발전됐다. 김일성을 「민족 해방의 지도자」「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로 공공연히 외치고 활자화하기에 이르렀다.
6·25에 대한 수정주의 이론은 한국 전쟁이 미국과 이승만의 공모에 의한 북침 내지 남침유인으로 시작됐고, 김일성의 개전을 혁명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6·25가 국제 공산주의의 팽창 주의적 세계 정책에 따라 「스탈린」의 지시와 모택동의 지원하에 김일성의 모험으로 시작됐다는 정통주의 이론에 대한 극소수 반론으로 등장했다.
6·25가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것은 당시 노획된 각종 문서와 정황, 그리고 다수 목격자의 증언으로 명백해 졌다.
더구나 신상옥-최은희 증언에 의하면 북한 김정일은 『6·25는 남조선을 매판 자본가와 지주들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남조선을 친데서 비롯됐다』고 말함으로써 북한 스스로 확인했다.
6· 25가 「스탈린」의 팽창주의 정책과 김일성의 한반도 적화 통일 전략이 결합된 북의 남침 전쟁임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의 이념적 혼란은 특정 이데올로기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객관적 평가가 결여된 데 기인한다. 그것은 변혁 세력이 어떤 사상을 변혁 운동의 수단 논리로 차용하면서 필요한 부분을 편의적으로 견강부회하기 때문이다.
그런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6·25의 책임과 결과를 진실하게 해석하고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는 결코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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