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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줄사택, 보존할까 청산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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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모란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모란 사회팀 기자

최모란 사회팀 기자

높은 건물이 빼곡한 인천시 부평구 부영로 주택가 한복판엔 ‘폐가촌(廢家村)’이 있다. 단층의 작은 집 80여 채가 다닥다닥 줄지어 붙어있는 이곳의 집들은 낡다 못해 허물어지기 직전이다. 지붕이 내려앉아 하늘이 보이기도 하고 벽 일부가 무너진 곳도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기계 제작회사 ‘히로나카 상공(弘中商工)’이 조선인 노동자를 수용하기 위해 만든 합숙소다. 1940년대 군수물자 보급창을 운영하던 미쓰비시 중공업이 인수하면서 이후 ‘미쓰비시(三菱) 줄사택’으로 불린다.

내부에 화장실도 없는, 지은 지 80년이 넘은 낡은 건물인데도 아직도 10여 가구가 거주한다. 이곳은 매년 3·1절과 광복절 등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날이 다가오면 ‘논란’이 된다. “도심 흉물인 낡은 집을 헐고 개발하자”는 주민들과 “강제노역의 아픈 역사도 후대에 알려야 한다”는 지역 문화계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1914년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 인천에서 옥고를 치르면서 다른 조선인들과 노역했던 인천항 내항 1부두도 재개발 얘기가 나오기 무섭게 “보존”이 언급됐다.

이는 인천시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낡은 근대 건축물의 보존 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일제강점기 면사무소로 쓰였던 경기도 안양시 서이면 면사무소나 종묘·종사 회사 건물이었던 수원시 부국원처럼 지자체가 건물을 사 보존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상당수가 ‘일본 잔재 청산’과 ‘개발’ 논리 등에 허물어졌다.

독립기념관의 ‘국내 독립운동·국가수호 사적지’ 데이터에 등록된 ‘독립운동’ 관련 경기도와 인천의 사적지는 각각 196곳과 25곳. 이중 원형 그대로 보존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사라진 현장은 역사성도 희미해진다. 기생 김향화(1897~?)가 살았고 동료들과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던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일대가 영화 ‘극한직업’ 흥행으로 ‘수원 통닭 거리’로만 알려진 것처럼 말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개발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역사’라는 이유로 타인의 재산권을 간섭하며 낡은 건축물을 마냥 방치하게 할 수도 없다. 3·1운동 100주년인 올해 각 지자체는‘지역 항일운동’을 알리는 다양한 기념사업을 펼치고 있다. 기려야 할 인물도, 장소도 많다. 그렇다고 관련된 모든 곳을 복원하고 보존할 수도 없다. 다만 무슨 날만 되면 역사를 외칠 게 아니라 사라지는 역사 현장에 작은 안내판이라도 세워 평소에도 기리는 노력은 필요할 듯싶다.

최모란 사회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