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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4연임론, 이회창과 황교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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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도쿄총국장

서승욱 도쿄총국장

“나이도 어린데, 비행기를 많이 탔네.” 2000년대 초 항공기 티켓에 찍힌 탑승횟수를 본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장외집회를 따라다니다 보니 국내 마일리지만 불어났다”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출입처인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이 야당으로 전락한 1998~2000년,부산으로 대구로 장외집회를 숱하게 쫒아 다녔다.

‘김대중(DJ) 정권 국정파탄 규탄’, ‘언론자유 말살 규탄’, ‘정책실패 규탄’이란 제목이 달린 집회들이었다. 사무총장은 “없는 야당 살림에 등줄이 휜다”고 투덜댔고, 언론들은 “지역감정에 불을 붙인다”고 비판했지만 그 시대엔 그게 정치였다. 자칭타칭 ‘DJ 저격수’들이 바람을 잡으면 이회창 총재는 조용필처럼 늘 막판에 마이크를 잡았다. 웅변조 연설이 지금도 생생하다.

옛 기억을 다시 떠올린 건 이 총재와 닮았다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때문이다. ‘경기고’, ‘법조인’, ‘국무총리’이란 공통점외에 필자가 주목하는 건 두 사람의 메시지다.

“미세먼지가 아니라 ‘문’세먼지”, "정권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책”, "폭정에 맞선 전투”라는 황 대표의 메시지는 강렬하지만 미숙하다. 대한민국을 ‘문재인 대 황교안’의 1대1 구도로 만들겠다는 신인의 다급함이 감춰지지 않는다.

대선 패배로 잔뜩 독이 올랐던 20년 전 이회창도 그랬다. 집회 때마다 “DJ가 기업과 지역경제를 다 죽인다”고, “그가 보수를 토막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독재와 맞서는 제2의 민주화 운동’을 외쳤다. 말은 화끈했지만 실속이 없었다. ‘보수가 낼 수있는 최고의 후보’로 통했던 대쪽 이미지, 선진 보수의 비전은 ‘싸움꾼 이회창’에 가려졌다. 중도층으로의 확장성, 표의 성장판도 함께 닫혔다. 애초부터 다음 상대는 DJ가 아니었는데, 링에 오르기도 전에 지쳤고, 상처를 입었다.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지금의 일본 야당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선 3년차 정권의 미숙함과 갈팡질팡이 문제라면 일본 정치는 7년차 ‘아베 원맨쇼’의 부작용이 심각하다. 통계 부정으로 나라가 발칵 뒤집혔지만 정부는 “거짓말은 했지만, 은폐하진 않았다”는 황당무계한 검증 보고서를 버젓하게 발표한다. 그래도 국민들은 자민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를 끌어내릴 생각이 없다. 오히려 ‘아베 4연임론’까지 나온다. 2009~2012년 ‘악몽’같은 민주당 집권을 경험한 국민들은 아베만 비판하는 대안없는 야당에 미래를 맡길 엄두를 못낸다.

‘친박끼리’, ‘보수끼리’의 패거리 의식, 정치적 감수성이 결여된 거친 입만으로 ‘골목대장’은 가능할지 몰라도 큰 꿈은 이룰 수 없다.

서승욱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