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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통상임금 신의칙, 법원마다 달라…혼란스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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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최대 쟁점 '신의칙' 적용 기준은 

경기 광명시 소하동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중앙포토]

경기 광명시 소하동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중앙포토]

이번 판결에서 최대 쟁점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적용 여부였다.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결론’은 1심과 같지만, 적용기준이 또다시 추가되면서 재계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신의칙은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방법으로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민법상 원칙이다(민법 2조1항). 2013년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소송 판결문에서 ‘회사 경영 사정이 나빠 존립이 위태롭다면, 근로자들이 임금을 소급청구하는 건 신의칙에 어긋난다’고 명기했다.

 경기 광명시 소하동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중앙포토]

경기 광명시 소하동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중앙포토]

1심은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 기아자동차의 당기순손실 여부와 이익잉여금·부채비율을 고려했다. 1심 재판부는 ‘기아차는 2008년에서 2015년 사이에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적이 없고, 매년 최대 16조원의 이익잉여금을 보유했으며, 부채비율(169.14%→63.7%)도 감소했다’고 판단했다.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은 건 2심 재판부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번엔 기준이 다소 추가됐다. 2심 재판부는 ‘당기순이익, 매출액, 동원 가능한 자금의 규모(부채비율·유동비율), 보유한 현금·금융상품 규모’를 고려하면서 ‘이번 사건으로 기아차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신의칙을 적용하는 기준이 1심보다 더 복잡해진 것이다.

통상임금 판결은 매번 기준이 약간 상이하다. 지난 2014년 대전지방고등법원은 동원금속 통상임금 판결에서 주주배당금 지출을 고려했다. 같은 해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은 미처분 이익잉여금을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또 울산지방법원은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소송에서 ‘총인건비 대비 추가수당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신의칙을 인정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 통상임금 소송의 경우 창원지방법원은 ‘회사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충분하다’는 이유에서 신의칙을 부정했다.

서울 양재동 기아자동차 본사. [중앙포토]

서울 양재동 기아자동차 본사. [중앙포토]

재계는 비일관적인 잣대로 기업 재정 상태를 평가하면 통상임금 판결이 어떻게 귀결할지 예측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제시했던 신의칙 판단 기준은 3가지였다. ▶상시 초과 근로 여부 ▶높은 정기상여금 비유 ▶실질임금 인상률이다.

김영완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대법원 판단을 기준으로, 초과근로가 빈번해서 수당이 고액이고, 정기상여금 비율이 높아 실질임금 인상률이 높은 기업이 통상임금 인상 시 존립이 위태로운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기아자동차 2심 재판부가 당기순이익·매출액 등을 임의로 고려해서 신의칙 위배 여부를 판단한 건 대법원의 취지와 다르기 때문에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판단”이라는 것이 김영완 본부장의 지적이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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