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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병 고치자고 14세 아들 골수 뽑으라니" 말초혈 이식 막는 장기이식법 바뀐다

중앙일보

입력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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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백혈병 환자 A씨는 중학교 2학년생 아들(14)에게서 말초혈조혈모세포를 이식받기로 했다. 조혈모세포 이식 밖에는 치료 방법이 없는 상태였다. 가족 중 유일하게 아들만 조직적합성 검사를 통과했다. 말초혈 조혈모 세포는 골수에 있는 조혈모 세포를 말초 혈관으로 이동시킨 뒤 채취한다. 성분 헌혈과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기존 골수 이식보다 공여자에게 훨씬 간편하고 안전한 방법이다. 하지만 A씨는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병원에선 “말초혈 이식은 안되고 꼭 이식수술을 받으려면 아들에게서 골수 채취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따. 현행 장기이식법이 골수를 제외하고는 만 16세 미만인 사람의 장기 등은 적출할 수 없게 돼 있어서다. A씨 아들이 아버지에게 골수를 기증하는건 가능하지만, 말초혈 기증은 할 수 없는 이상한 상황에 놓였다.

A씨와 같은 안타까운 환자들을 위해 말초혈 기증 대상이 확대하는 법안이 제출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16세 미만도 말초혈을 통한 조혈모세포이식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17일 밝혔다.
과거에는 백혈병 등 혈액암 환자들에게 조혈모세포를 이식하기 위한 방법으로 조혈모세포 기증자에게 전신마취를 하고 엉덩이뼈에 대형주사바늘을 꽂아 골수를 채취했다. 이제는 의료기술의 발달로 전신마취를 하지 않고도 말초혈을 채취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조혈모세포기증자에게 조혈모세포 촉진제를 투여한 뒤 골수 내의 조혈모세포를 자극해 말초혈로 나오게 한 뒤 채취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말초혈 조혈모세포이식 방법은 현재 국내 조혈모세포이식 비중의 98%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에는 ‘장기 등’의 정의에 골수만 포함된다. ‘말초혈’의 경우 장기이식법 시행령에만 규정돼있다.  이 때문에 16세 미만인 사람으로부터 적출할 수 있는 ‘장기 등’에 ‘말초혈’이 포함돼 있지 않다. 말초혈 조혈모세포이식술이 최근에 주로 사용하는 치료법인데도 A씨처럼 16세 미만인 공여자에게서는 ‘말초혈’ 채취가 어려운 상황이다. 개정안은 조혈모세포 이식을 목적으로 하는 ‘말초혈’을 ‘장기 등’의 정의에 포함되도록 명확히 하고, 16세 미만인 사람으로부터 예외적으로 적출할 수 있는 장기 등에 ‘말초혈’을 추가하는 내용을 담았다.

정 의원은 “혈액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과거에는 전신마취까지 하면서 대형 주사를 꽂아 골수를 채취했지만, 지금은 골수채취보다 말초혈 조혈모세포채취 방법이 훨씬 많이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은 16세 미만 어린이들에게 여전히 과거의 무서운 골수채취 방식만을 규정하고 있어 시급한 개정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 대표발의한 개정안이 이 하루 빨리 통과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윤소하, 김병기, 임종성, 김상희, 장정숙, 윤일규, 김경협, 이용득, 박정, 강훈식 의원이 공동발의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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