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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한파에 입주 쓰나미…전셋값 뚝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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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전셋값 급락으로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우려가 커졌다.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에 전셋값 하락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전셋값 급락으로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우려가 커졌다.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에 전셋값 하락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최근 2년 전세계약을 갱신한 김모씨는 보증금 일부인 3000만원을 주인으로부터 돌려받았다. 2년 전 송파구 잠실 전용 84㎡ 아파트를 8억3000만원에 전세 계약했는데 현 시세가 8억원 정도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차액을 역월세 형식으로 받고 싶었지만 주인이 여윳돈으로 한꺼번에 돌려줬고 전세 계약서도 다시 썼다.

서울 강남발 역전세난 먹구름 #수천만원은 예사, 3억 떨어진 곳도 #대출 막힌 집주인, 세입자와 갈등 #전세금반환보증 가입 1년새 2배로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역전세가 현실화되고 있다. 세입자는 하락한 금액만큼 주인으로부터 돌려받고 계약 갱신을 하거나 돌려받고 나가는 것이다. 역전세를 맞아 집주인이 돌려줄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세입자와의 갈등도 발생하고 있다. 여윳돈이 없으면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주택담보대출은 정부 규제 강화로 쉽지 않다. 전셋집은 이미 전세보증금이 대출 한도를 넘어 대출이 안 되고 기존 다른 집의 대출을 늘리기도 만만치 않다. 전셋값이 정점일 때 전세를 끼고 ‘갭투자’한 주인들은 바늘방석인 셈이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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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강남권 아파트 전셋값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강남권 전셋값 전고점은 지난해 1월 말이었다. 이때와 비교하면 송파구 7.1%, 서초구 6.0%, 강남구 5.7% 각각 내렸다. 지난주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2017년 5월 말 수준이다. 전셋값이 많이 내린 지역은 2년 이전으로 떨어졌다. 강남권은 2015년과 비슷하다.

2017년 1월 계약된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 84㎡ 22건의 평균 전세보증금이 8억2000만원이었다. 올해 1월 계약된 29건의 평균은 7억7000만원으로 5000만원 낮다. 2017년 1월 계약한 세입자가 1월 계약을 갱신할 때 5000만원을 돌려받는 셈이다.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 59㎡ 1월에 한 건 6억6000만원에 전세 계약했다. 2년 전 2017년 1월 거래된 같은 주택형 3건의 평균 보증금은 6억9000만원이었다. 용산구 이촌동 LG한강자이 전용 133㎡가 지난 1월 하순 10억원에 전세 계약했다. 같은 주택형 15층이 2년 전인 2017년 1월엔 3억원 더 비싼 13억원이었다. 노원구 상계동 주공7단지 전용 49㎡ 5층이 2017년 1월 2억500만원에 전세 계약됐는데 지난 1월엔 2500만원 낮은 1억8000만원에 계약됐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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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이후 집값 약세로 매매에서 전세로 돌며 전세 수요가 늘었는데도 전셋값이 많이 떨어진 것은 ‘입주 쓰나미’ 때문이다. 서울에 새 아파트 입주가 봇물이다. 2015~17년 연평균 입주물량(2만5000여 가구)의 1.4배인 3만6000여 가구가 지난해 입주했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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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들은 전세금 보호에 비상이 걸렸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한 세입자가 지난해 2만5980가구로 2017년(1만272가구)의 두 배가 넘는다. 올해 1월 가입 가구가 2371가구로 지난해 1월(1234가구)의 2배 육박하고 2년 전인 2017년 1월(272가구)의 9배에 가깝다. 실제로 역전세난이 현실화되면서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보증회사가 세입자에게 대신 보증금을 돌려준 돈이 1년 새 4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보증보험과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이들 전세대출 보증기관이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돌려준 보증금은 지난해 1607억원으로, 2017년(398억원)의 4배를 넘었다.

역전세는 앞으로 확산할 것 같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 아파트 입주가 더욱 늘어 각각 4만 가구가 넘게 들어설 예정이다. 연간 4만 가구 넘는 입주는 2008년(5만6000여 가구) 이후 11년 만이다. 역전세가 시작된 강남권 일대의 입주는 더욱 많다. 강남권 생활 범위인 강남 4구(강동구 포함)의 입주 물량이 지난해와 올해 각각 1만6000여 가구고, 내년에는 1만3000가구다. 2015~17년 연평균 입주물량은 7800여 가구였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집값과 전셋값 동반 하락세가 장기화하면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모두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전세’와 맞물려 역전세가 주택시장에 큰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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