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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만의 모자 상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세상 사람들이 흔히「기구한 팔자」라고 말하는, 혼자 사시는 고모가 그간 잊고 지내야만 했던 헤어진 아들을 만났다는 소식이 들려 서둘러 친정으로 갔다.
27세나 된 건장한 청년으로 자란 아들과, 이젠 50줄에 들어선 어머니의 첫 상봉을 지켜본 식구들은 이제 비로소 마감되는 23년의 한에 저마다 저미는 가슴을 부여안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몇 년 전 TV를 통해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이산가족 찾기」가 이런 식으로 우리 집안에서도 재현될 수 있음에 또다시 가슴이 뭉클했다.『어머니, 절 받으세요.』『아니다, 난 너한테 절 받을만한 에미가 못된다.』 그리곤 부둥켜안고 회한의 울음을 터뜨렸던 모자. 고종사촌 누이인 나도 처음 얼굴을 대하고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 인사말이라는 게 그렇게 궁색할 수가 없었다.
『응, 그래. 내가 아마누나가 될 거야.』 이렇게 우스꽝스런 인사말이 또 있을까.
그러나 우리 식구 모두가 고맙고 대견하게 생각했던 것은 혹시 제대로 보살핌을 방지 못해 「못된 미운 오리새끼」로 커있지나 않을까 했던 걱정을 말끔히 씻어 버릴 만큼 건실한 청년으로 자라주었다는 점이다.
버젓한 부모에 부족할 것 없는 환경, 그래도 무엇이 불만인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청소년들이 많은 요즘 여러 가지로 모자란 환경 속에서도 당당히 성장해 자신의 성실함으로 탄탄한 직장까지 갖게된 사촌동생이 그렇게 훌륭해 보일 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자식들이 호강에 겨운 투정을 하는가. 부모나 잘못된 사회만을 탓하며 남의 인생도 아닌 하나뿐인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는 청소년들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는 요즘, 사촌동생의 23년만의 출현은 우리 식구에게 여러 가지로 고마운 만남이었다.<서울 창2동 621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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