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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늘푸른 소나무-제2부 세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말라도 너무 마른 북어라는 간수의 말에, 236번은 자기의 몸을 내려다 보았다. 비듬이 허옇게 말라 붙은 종아리는 뼈에 가죽을 싼 듯 살점이라곤 없었고, 정강이뼈는 가죽을 찢고 취어 나올 듯 했다. 엉치뼈는 그야말로 버썩 마른 바가지였다. 허리는 한줌되게 홀쭉 말랐고, 갈비뼈가 앙상하게 돌기져 있는 위로 집어낼 수 있을 만큼 심줄이 지렁이 엉기듯 퍼렇게 돋아 있었다.
온몸이 뼈를 싸 바른 가죽도 쭈글쭈글 마른데다 비듬을 겨 바른 듯 허옇게 쓰고 있었다.
『목불인견(목불인견)이로군. 자네, 형기가 얼마 남았는가?』 간수가 236번의 몸을 훑어보며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일년이 채 못 남았나… 그 정도 될 겁니다.』 『섭생에 애써야겠어. 이런 몸으로는 수형 생활을 몇 달도 버텨낼 수 없어.』 『······』 수건으로 살을 가리고 꾸부정이 선 236번은 말 없이 간수를 바라보기만 했다.
『몇 번인가?』
『236번이옵니다.』
『알았어. 가봐.』
236번이 간수에게 공손히 절을 하곤 자기가 섰던 자리로 돌아 걸었다. 그가 보기에 「해골들의 대열」이라 할만큼 알몸으로 늘어서서 떨고 있는 수인들은 한결같이 말라비틀어진 몰골들이었다. 그런데 간수가 유독 자기만을 불러내었음을 미루어 볼 때,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말랐을까 가늠이 되었다. 불현듯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 단식 고행(고행)을 한 불타가 떠올랐다. 설마하니 자기의 육신이 그 정도까지 말랐으랴 싶었다.
병감의 수인들은 무슨 병을 앓든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감방의 수인들보다 훨씬 자유스러운 데가 있었다. 열을 지어 서서 목욕탕으로 가면서도 앞 뒤 사람들과 분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곳곳에 간수가 지키고 있었으나 그 대화를 막지 않았다. 그래서 복도는 웅성거리는 소음으로 가득 찼다.
『형씨는 무슨 병이오?』
236번의 뒤에 서서 연방 깊은 기침을 콜록거리던 늙은이가 물었다.
『열병이었나 봅니다.』
『그렇지, 열병이야말로 폐병처럼 살과 피를 말리지. 난 각혈이 심해 이 동절을 못 넘길 것 같다오. 지난번에 면회를 온 마누라한테 수의와 관을 준비해두라고 일렀소.』 236번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피맺힌 사연을 지녔고, 누구나 그 고(고)의 수렁에서 헤매고 있었다. 세상은, 특히 감옥은 연옥과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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