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덕(51) 국립중앙의료원(NMC)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사망을 누구보다도 안타깝게 생각한 사람이 이국종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장이다. 그는 7일 미군과 훈련 비행을 하느라 온종일 바빴다. 어렵게 전화가 연결돼 윤 센터장 관련 회고를 들었다.
설 근무 중 별세한 응급의료센터장 추모 #
- 언제 윤 센터장의 사망 소식을 들었나.
- 5일 새벽 우리 병원에서 당직 근무를 하던 중 NMC 후배 의사가 전화로 알려줬다. 사망 얘기를 해서 깜짝 놀랐다. 말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중증 외상 환자가 발생해서 우리 병원으로 보내려는 줄 알았다. '어디로 출동하면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윤 센터장은 전국의 외상센터 상황을 꿰고 있어서, 답답한 일이 있으면 새벽에 전화해서 출동 요청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도 당황해서 '무슨 얘기 하느냐'고 자꾸 되물었다.
- 윤 센터장은 어떤 사람인가.
- 2002년 내가 외상센터를 시작할 때 윤 센터장은 NMC 응급의료팀장을 맡았다. 당시만 해도 NMC 직원은 공무원이었다(지금은 특수법인). 윤 센터장이 보통 사무관처럼 여러가지 업무를 돌아가면서 맡아서 공직자로 진급할 수도 있었다. 아마 그리했으면 지금쯤 국장이 됐을 거다. 그런데 그걸 포기하고 응급만 하겠다고 복지부 산하기관인 NMC에 자리잡았다.
- 응급이 그리 중요했나.
-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왔다갔다 한다. 윤 센터장은 그런 게 싫어서 응급만 하겠다고 선택했다. 윤 센터장은 임상 의사 과목 중 비인기과목인 응급의학을 택했고, 민간의료기관 등으로 나가서 임상 의사를 하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응급의료의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다.
- 윤 센터장을 언제 알았나.
- 학회에서 스치며 인사하는 사이였다. 그러다 2008년 허윤정 전 민주당 전문위원이 소개해줬다. 복지부 과장과 넷이서 응급의료와 외상센터의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허 위원은 아주대 교수로 옮겼고, 윤 센터장이 이렇게 됐다. 허 위원이 교수가 되면서 오른쪽 팔이 떨어져 나갔고, 윤 센터장이 숨지면서 왼쪽 팔이 떨어졌다.
- 자주 만났나.
- 내가 어려울 때 항상 그에게 기댔고 해결책을 자문했다. 2012년 아주대병원이 권역외상센터에서 탈락했을 때 '이제 끝났구나'라고 포기하려 했다. 그런데 윤 센터장이 나를 불러 NMC 뒤 횟집에서 잡어회를 사주면서 '1년 더 벼텨봐라'고 용기를 줬다. 그 때 소주를 많이 마셨다. 또 최근 아주대센터 닥터 헬기가 난항에 빠졌을 때 해결책을 제시해줬다.
- 윤 센터장과 의견이 항상 일치했나.
- 그렇지 않다. 그는 원칙주의자이다. 윤 센터장과 함께 선진국 의학교과서를 보면서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기준)에 맞는 외상센터를 설계했다. 이제는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
- 응급의료에 문제가 생길까.
- 한국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얘기할 사람은 윤 센터장 밖에 없다. 사심이 없고, 이권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다. 국가적으로 공백을 메우기 쉽지 않을 거다.
- 최근에 본 적 있나.
- 2주전에 우리 병원에 와서 회의 했다. 윤 센터장이 '건강 챙겨라"라고 나를 걱정했다. '헬기 조심해서 타라' '비행 조심해라'고 당부했다. 내가 '조심한다고 되느냐'고 답했다. 윤 센터장이 건강해 보여서 그럴 줄(심장마비) 몰랐다. 아픈 줄 몰랐다.
신성식 기자sssh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