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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의 옐로하우스 悲歌]⑩ "이렇게 영업하는데 왜 불법?" 외신기자 놀라게 한 집창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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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1962년 생겨난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집창촌 속칭 ‘옐로하우스’가 재개발된다. ‘1월 말까지 모두 비우라’는 최후통첩을 받았지만 10여개 업소의 성매매 여성 40여명은 갈 곳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설연휴가 끝나면 강제 철거가 시작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면서 불상사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벼랑에 몰린 여성들이 마음속 깊이 담아뒀던 그들만의 얘기를 꺼냈다. 집창촌에서 30여년을 보낸 성매매 여성 B씨(53)의 증언을 ‘옐로하우스 비가(悲歌)’ 시리즈에서 소개한다.


대구 중구 도원동의 집창촌'자갈마당' 풍경. [사진 대구시]

대구 중구 도원동의 집창촌'자갈마당' 풍경. [사진 대구시]

‘옐로하우스 비가’ 연재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댓글 중 하나가 ‘차라리 일본강점기 공창제처럼 성매매를 합법화하라’는 내용이다. 공창제는 1916~48년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실시한 성매매 제도다. 국가가 성매매를 법으로 관리한 이 제도는 해방 이후 미 군정 때 폐지됐다.

80년대 중·후반 대구 도원동의 집창촌 ‘자갈마당’에서 일했던 B씨는 “워낙 사람이 붐비고 번성해 당연히 국가가 관리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당시 자갈마당의 업소는 방에 딸린 욕실도 없는 판자촌이었다. 그래도 늘 북적였다는 게 B씨의 말이다.

홍성철 작가의 『유곽의 역사』에 따르면 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이곳에서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은 1000명에 가까웠다. B씨가 화려한 거리를 보며 집창촌이 허가받은 곳이라고 여긴 것도 무리는 아니다.

‘88 올림픽’ 전후로 번성 

“의사가 상주하는 보건소가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산부인과 검사는 일주일 1회, 간염·에이즈·매독 등을 알 수 있는 피 검사는 3개월에 1회, 보건증 검사는 6개월에 한 번 했습니다. 검진은 무료였어요. 다 나라에서 해준 것이지요. 다만 몸에 이상이 있으면 치료는 개인 돈으로 했어요. 심한 성병에 걸리면 다 나을 때까지 보건소에서 치료받게 했는데 몇몇 업주가 보건소에 돈을 주고 여성들을 빼가곤 했어요. 피임기구를 주면서 또 일을 시킨 거죠.”

당시 집창촌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모두 행정기관에서 보건증을 발급받아야 했다. 대부분 이름과 나이를 속여 적었지만 훗날 실명제로 바뀐 뒤에는 본명을 적었다고 한다.

B씨가 자갈마당이 허가받은 집창촌인 줄 알았던 이유가 또 있다. 그는 이곳에 있었던 2~3년 동안 경찰이 단속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솔직히 법적 허가를 받지 못한 곳이란 걸 알고 나서도 반(半)공창이라고 생각했어요. 간혹 술 취한 손님이 ‘돈 낸 만큼 못 놀았다’며 가까운 파출소에 신고했는데 업주나 이모가 갈 필요도 없어요. 파출소에서 전화로 ‘몇 호 누구’ 이렇게 호출하면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돼요. 경찰관이 손님에게 ‘그만 하면 잘 노셨다’면서 조서도 안 쓰고 알아서 다 처리해줬으니까요.”

대형화, 산업화한 성매매업. [중앙포토]

대형화, 산업화한 성매매업. [중앙포토]

정부는 61년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제정해 성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했지만 이듬해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전국 집창촌 104곳에 특정 지역을 설치하면서 사실상 성매매를 허용했다.

국가의 묵인은 계속됐다. 홍 작가는 책에서 “5공화국 군부정권은 3공화국의 특정 지역 설치를 흉내 내듯 윤락 여성 집중 관리지역을 설정했다. 그리고 윤락 여성 등록을 받아 보건증을 발급하고 정기적인 건강진단을 설치했다. (…) 올림픽을 앞두고 86년에는 외국인들의 미관을 위해 윤락가 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사업에 나섰다. 비좁은 인도 대신 널찍한 소방도로가 뚫리고 커다란 유리창을 갖춘 ‘유리방’이 본격 등장했다”고 썼다.

지난해 2월에는 국가가 불법적으로 미군을 대상으로 한 기지촌을 조성해 관리했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서울고법 민사22부는 이씨 등 기지촌 성매매 여성 116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1957년부터 90년대까지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한 이 여성들은 정부가 기지촌을 조성하고 관리하면서 성매매를 조장해 신체적·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권영진 대구시장, ‘자갈마당’ 폐쇄 공약  

대구 중구 도원동 자갈마당 안에 있는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 전경. [사진 대구 중구청]

대구 중구 도원동 자갈마당 안에 있는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 전경. [사진 대구 중구청]

화려했던 자갈마당은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 뒤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성매매 종사 여성은 350여 명으로 줄었다. 2014년 권영진 대구시장이 취임하면서 자갈마당 폐쇄를 공약으로 내걸며 본격적으로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대구시와 경찰은 집중 단속을 벌이면서 2017년 집창촌 골목에 CCTV와 가로등을 설치했다. 이어 성매매 업소 사이에 전시공간인 아트스페이스를 열었다.

그럼에도 홍등이 꺼지지 않던 이곳이지만 인천 옐로하우스처럼 부동산 개발을 통해 어두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대구시는 민간개발 시행사인 도원개발이 아파트 개발 사업승인 신청을 해 심사하고 있다고 지난달 밝혔다. 심사를 통과하면 이 일대 집창촌은 사라지고 오는 11월 대규모 아파트 건설 공사가 시작된다. 현재 자갈마당에는 10여 개 업소에 30여 명 여성이 남아 있다.

B씨는 “지난해 미국인 외신기자가 옐로하우스에 취재하러 와 ‘이렇게 공개적으로 영업하는데 불법이라는 것이 놀랍다’고 하더라”며 “집창촌에서는 수십 년 동안 국가의 암묵적 동의 아래 성매매가 이어져 왔으며 앞으로도 어디서든 성매매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80년대 후반 여성 업주의 학대를 못 이겨 자갈마당에서 나와 부산 완월동(현 서구 충무동) 집창촌으로 갔다. 부산에선 또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ins.com

<11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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