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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의 옐로하우스 悲歌]③ 매 맞고도 빌어야 했다···법이 외면한 '악몽의 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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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1962년 생겨난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집창촌 속칭 ‘옐로하우스’가 재개발된다. 이미 많은 곳이 문을 닫았고 남아 있는 10여개 업소의 성매매 여성 40여 명은 이달 안에 나가라는 최후통첩을 받은 상태다. 여성들은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온 이들을 설득해 가슴에 품어온 얘기들을 끄집어냈다. 그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싣는다.


조성 초기 근처 미군부대에서 얻은 노란색 페인트로 외벽을 꾸며 옐로하우스로 불리기 시작했다. 지하철 숭의역이 개통하면서 안이 보이지 않게 노란 시트지를 붙였다. 김경록 기자

조성 초기 근처 미군부대에서 얻은 노란색 페인트로 외벽을 꾸며 옐로하우스로 불리기 시작했다. 지하철 숭의역이 개통하면서 안이 보이지 않게 노란 시트지를 붙였다. 김경록 기자

성매매 종사 여성들에게 우범자들이 손님으로 찾아온다는 23일 보도(②전자발찌 찬 손님···봉변당할지 몰라 모른 척만)가 나가자 온라인상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전자발찌는 기본이 강간범인데 얼마나 무섭겠느냐’며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에 공감하는 댓글도 있었지만 ‘성매매가 불법이니 이에 종사하는 여성도 성범죄자’라는 비난 의견이 많았다.

지난 22일부터 연재한 여성 A씨의 이야기는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다. A씨는 기자의 오랜 설득에 난생 처음 마음을 열었지만 네티즌들의 비난 댓글이 쏟아지자 “더 이상 내 얘기를 쓰지 말아달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자신을 욕하는 건 감내하겠지만 아무 죄 없는 가족을 비난하는 건 견디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나를 이해해주는 일부 댓글에 큰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특히 행정적 지원 절차를 댓글로 알려준 네티즌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 여성들에게 우범자를 거부할 자격이 있느냐는 비난이 많았지만 실제로 옐로하우스 여성들은 심각한 폭력 피해를 경험해왔다.

숭의역 부근 재개발 대상 건물의 절반이 철거됐다. 김경록 기자

숭의역 부근 재개발 대상 건물의 절반이 철거됐다. 김경록 기자

여성 B씨(53)는 손님으로부터 당하는 신체적·언어적 폭력은 일상이라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잡지에서 카페 여종업원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서울에 갔다가 성매매에 발을 들이게 됐다.

역시 가족을 책임지다 보니 이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 사업이 기울어 빚이 쌓였다. 어머니는 몸이 아파 일을 못 했다. 아래로 동생이 셋.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형편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B씨뿐이었다. 공장과 매점에서 일했지만 수입이 적었다.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지금까지 가장 역할을 해왔다.

옐로하우스에 온 지는 15년 정도 됐다. 그는 지금도 술 취한 남성들이 가게에 찾아오면 가슴이 덜컥 한다고 했다.
“10명이 오면 7~8명은 술 취한 사람이에요. 우리에게 돈 벌기 쉽다고 하는데 진짜 아닙니다. 술 취한 사람들이 하는 이X, 저X, XXX 이런 거는 너무 많아서 욕으로 치지도 않아요. 밖에서 그런 일 당하면 신고하잖아요.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처벌을 받고. 우린 웃으면서 그걸 받아줘야 해요. 이 일 하면서 안 맞아본 여성은 없을 거예요.”

또 다른 여성은 몇 년 전 무방비 상태에서 발길질을 당했던 악몽을 떨치지 못한다. 남성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욕을 심하게 하며 자꾸 때리려고 해서 “돈을 돌려 드릴 테니 가시라” 하고 욕실에 들어갔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아채지도 못한 채 몸이 공중에 붕 떴다 떨어졌다. 남성이 발로 걷어찬 것이었다. 폭력을 가한 남성은 이모와 다른 여성들이 말리는 과정에서 발이 까졌다며 오히려 합의금을 요구했다.

이 여성은 “맞은 건 나인데 오히려 ‘죄송하다’고 사과를 해야 했다”며 “남성들의 스트레스 해소용이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어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여성은 당시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신발장에 가득하던 신발은 다섯 켤레만 남았다. 김경록 기자

신발장에 가득하던 신발은 다섯 켤레만 남았다. 김경록 기자

B씨에 따르면 남성들은 주로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할 때 폭력을 쓴다. 대기실에서는 괜찮다가 방에 들어오면 돌변하기도 한다.

“동료 머리채를 잡고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세게 몇 번이나 박은 남성도 있었어요. 말리는 이모까지 때리려 하더군요. 방에 있는 TV·조명을 부수는 남성, 같이 술 마시다가 여성에게 술병 집어 던지는 남성 등등 어떤 날은 하루에 몇 번이나 그런 일이 벌어져요. 폭행을 하고선 그냥 태연하게 사라져요.”

이들이 무방비로 당하는 건 신고를 못하기 때문이다. 신고했다가 성매매로 적발되면 업주는 물론 이모·여성들까지 벌금을 내야 한다. B씨는 “가해 남성의 인적사항도 모르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며 답답해했다.

이들이 손님에게 폭행을 당하면 신고를 해도 괜찮을지 수사기관에 물었다. 인천경찰청 관계자는 “신고 시 현장조사 과정에서 성매매했다는 진술과 증거가 나오면 폭력 피해와 별개로 처벌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폭력 피해가 크면 우선 피해자부터 챙기기는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신고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성매매 여성들을 많이 돕는 여성인권지원상담소 에이레네의 오선민 사무국장은 “이들이 노출을 꺼리고 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데 미숙해 상담소에 신고가 들어온 것은 연 10건 미만”이라고 말했다. 에이레네는 경찰 조사에 동행하거나 변호사 선임을 돕는다.

오 사무국장은 “폭력 증거가 확실하면 잘 처리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성매매 종사자라는 낙인 때문에 곤란을 겪는 일이 많다”며 “피해를 본 즉시 상담소에 신고하면 그래도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성매매 종사 여성의 폭력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여성가족부가 3년마다 성매매 실태조사를 하지만 2016년 조사에 폭력 항목은 빠져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설문지를 업소에 보내 조사하는데 폭력 항목을 넣으면 업주가 설문에 응하지 못하게 할 우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때리는 손님들보다 이 여성들이 나쁘다고 탓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시대에 매를 맞고 도리어 빌어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언제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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