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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의 옐로하우스 悲歌]⑤ "우리도 바바리맨 처벌 원하지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62년 생겨난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집창촌 속칭 ‘옐로하우스’가 재개발된다. 이미 많은 곳이 문을 닫았고 남아 있는 10여개 업소의 성매매 여성 40여 명은 이달 안에 나가라는 최후통첩을 받은 상태다. 여성들은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온 이들을 설득해 가슴에 품어온 얘기들을 끄집어냈다. 그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싣는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재개발을 앞두고 옐로하우스 일대가 점점 황폐해지고 있다. 법에 어긋나지만 사회의 묵인 속에 57년을 이어온 이곳엔 범죄자들도 꼬였다. ‘불법’이라는 굴레가 씌워져 숨소리도 내기 힘든 이곳 여성들은 손쉬운 범죄 타깃이다. 이들을 노리는 사람 중엔 공연음란죄 사범들, 일명 ‘바바리맨’이 있다.

이곳에 정기적으로 출몰하는 그들의 존재는 취재 도중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영상 촬영을 위해 카메라 기자와 함께 온 날 문제의 인물이 나타났다.

성매매 여성 B씨(53)의 얘기다.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왔던 날 바바리맨 한 명이 나타났어요. 골목 입구 슈퍼 앞에 있었습니다. 이를 목격한 이모가 무서워서 문을 잠그고 있었다고 하네요.”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집창촌 옐로하우스. 1962년 이곳에 조성됐다. 김경록 기자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집창촌 옐로하우스. 1962년 이곳에 조성됐다. 김경록 기자

‘바바리맨’들은 2016년 지하철 수인선 숭의역이 생기기 전에는 일주일에 5~6명 찾아왔다고 한다. 통유리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던 시대였다. 지하철 승객의 시선을 고려해 유리에 노란색 시트지를 붙이면서 이런 사람들이 줄어들긴 했지만 지금도 매주 2명 정도는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곳 여성들은 보통 1층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바바리맨은 밖에서 이들을 향해 온몸을 노출하고 몹쓸 행동을 한다. 현관 이모들이 내쫓으려 물을 뿌리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지만 꿈쩍 않고 버티는 부류도 있다.

성도착증 환자를 만나는 게 얼마나 끔찍한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직접 겪어보면 공포를 알게 된다. 여성들은 대개 한 번쯤 이런 부류의 남자를 본 경험이 있다. 기자는 비가 오는 날 “우산 있어요?”라는 남자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검은 우산으로 얼굴만 가린 남성을 본 적이 있다. 중학생 때였는데 소리도 못 지르고 다리를 덜덜 떨며 간신히 도망갔다. 그 일은 아직도 무서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업주와 여성들이 떠나고 폐허가 된 일부 업소. 김경록 기자

업주와 여성들이 떠나고 폐허가 된 일부 업소. 김경록 기자

옐로하우스 여성들도 다르지 않다. C씨(37)의 얘기다.
“이런 사람 나타나면 당연히 싫고 무서워요. 요즘은 휴대전화로 우리를 찍기도 해서 이모와 함께 쫓아가 보지만 날쌔게 달아나요. 하도 많이 찾아오니까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처음에는 정말 놀랐어요. 저도 모르게 소리를 꺅 질렀다니까요. 여기 여성들이 직접 얘기해보면 의외로 겁도 많고 순진해요. 다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온 것뿐이지요. 무서운 남자 만나면 공포를 느끼죠. 당연히.”

몰래 들어와 등 뒤에서 음란행위

이곳 여성들도 대부분 바바리맨을 처벌해주기를 바란다. 실제로 몇 년 전엔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관이 도착했을 때 이미 범죄자는 사라졌고 추적 수사를 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바바리맨들은 갈수록 대범해지는 경향도 나타난다고 한다. B씨의 얘기다.
“바바리맨이 여학교보다 더 많이 올 걸요. 자기들끼리 구역을 정하는 것 같은 현상까지 나타납니다. 누구는 1호부터 5호까지, 누구는 6호부터 10호까지 이런 식으로요. 기가 막히지요.”

이곳을 성범죄 해방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별의별 행각을 다 벌인다. 놀라운 것은 이들 중 상당수는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30~40대라는 사실이다. 역시 B씨의 증언이다.

“비만 오면 옷을 다 벗고 동영상을 찍는 남성이 있어요. 멀쩡한 차림으로 나타나는 걸 보면 돈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자기들 욕심을 채우고 나서 보수를 주면 죄가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1만원짜리를 놓고 가기도 하고, 작년 겨울엔 가게 앞에 눈을 치우고 가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러나 우리는 큰 모욕감을 느낍니다.”

법률전문가들은 이들의 행동이 모두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말한다. 우선 공연음란죄에 해당한다.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지각할 수 있는 상태에서 사람에게 수치감·혐오감을 주는 행위를 하는 죄다. 공연음란죄를 범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에 처한다.

공공장소에서 신체적 접촉 없이 몸을 노출하는 행위는 강제추행죄가 성립하지 않지만 엘리베이터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성기 노출 등의 음란 행위를 했을 때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기 때문에 심리적 압박에 따른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 따라서 가게 뒷문으로 몰래 들어와 여성 바로 뒤에 숨어서 몹쓸 짓을 하는 옐로하우스바바리맨들의 행위는 강제추행죄로 처벌도 가능해 보인다.

최성민 변호사는 “음란행위의 피해자가 성매매 여성이라고 해도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며 바바리맨은 충분히 처벌이 가능하다고 본다”며 “음란 행위를 한 뒤에 여성에게 돈을 준다고 해도 이미 범죄행위가 완료됐기 때문에 처벌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옐로하우스 한 업소의 문이 열려 있다. 바바리맨이나 좀도둑이 몰래 드나들기도 한다. 김경록 기자

옐로하우스 한 업소의 문이 열려 있다. 바바리맨이나 좀도둑이 몰래 드나들기도 한다. 김경록 기자

바바리맨의 경우 성매매 여성이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도 처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서울경찰청 송현건 경정은 “집창촌이라도 공연음란죄 신고가 들어오면 조사한다”며 “성매매 종사 여성이 아닌 제삼자가 신고했을 때 잠복해서 가해자가 특정되면 입건해 수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 경정은 “피해를 본 성매매 종사 여성이 직접 신고해도 마찬가지”라며 “신고인의 직업을 밝힐 필요 없기 때문에 성매매 여성이 제삼자인 것처럼 신고해도 된다”고 알려줬다.

경찰 “신분 밝히지 않고 신고 가능” 

이들에 대해선 다른 차원의 우려도 나온다. 이들의 범죄가 정신적인 문제와 연결된 경우가 많아 옐로하우스가 사라진다면 다른 곳에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처럼 사회지도층 인사가 공연음란죄로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성의학클리닉을 운영하는 강동우 원장은 “바바리맨은 대개 성도착증 환자이기 때문에 집창촌이 없어지면 다른 곳에 가서 같은 행위를 할 우려가 있다”며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왔다. D씨(36세)의 얘기다.
“사실 그들을 보면서 차라리 여기로 오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우리야 무섭고 불쾌하지만 이곳을 못 온다면 여학교 같은데 갈 수 있잖아요. 혼자 있는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한다면 더 무서운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우리는 여럿이 있으니 흉악한 범죄로 연결될 가능성은 작다고 생각해요.”

옐로하우스 취재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우리 사회의 그늘진 단면들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새롭게 나타난다. 지금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집창촌 폐쇄가 새로운 범죄 가능성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마련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인지 점검이 필요하다.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6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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