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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의 옐로하우스 悲歌]④수건에 감춘 렌즈…그는 '몰카'가 목적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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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1962년 생겨난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집창촌 속칭 ‘옐로하우스’가 재개발된다. 이미 많은 곳이 문을 닫았고 남아 있는 10여개 업소의 성매매 여성 40여 명은 이달 안에 나가라는 최후통첩을 받은 상태다. 여성들은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온 이들을 설득해 가슴에 품어온 얘기들을 끄집어냈다. 그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싣는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집창촌 옐로하우스. 문 앞에 보온장치가 달린 의자가 눈에 띈다. 호객을 하는 '현관 이모'의 자리다. 김경록 기자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집창촌 옐로하우스. 문 앞에 보온장치가 달린 의자가 눈에 띈다. 호객을 하는 '현관 이모'의 자리다. 김경록 기자

‘옐로하우스 비가 (悲歌) ’ 시리즈가 나가면서 다양한 반응이 잇따른다. 무차별적인 욕설을 하는 분들이 많지만 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해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4일 보도(③매 맞고도 빌어야 했다…법이 외면한 ‘악몽의 밤’)로 이곳 여성들이 심각한 폭력에 노출돼있지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독자들이 ‘노르딕 방식’을 도입하자는 제안을 했다. 성매매를 적발하면 성 구매자와 알선자만 처벌하는 방안이다. 스웨덴을 중심으로 일부 북유럽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다.

2010년 스웨덴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노르딕 모델을 도입한 1999년 이후 성매매 여성이 절반으로 줄었으며 성 구매 남성 비율은 13.6%에서 7.6%로 줄었다.

우리나라 인권 수준을 고려할 때 여성들을 때리는 성 매수자는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댓글이 지금도 계속 달리고 있다. 한 네티즌은 ‘동물도 때리면 동물 학대죄로 처벌받는데 인간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글을 통해 성매매 여성이 반려견보다도 폭력에 취약한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성매매 여성 인권, 노르딕 방식 대안 될까

취재를 하면서 놀란 건 이 시대 여성이 당하는 모든 종류의 억업과 폭력이 성매매 여성들에게 집중적으로 가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불법 동영상 촬영이다. 많은 남성들이 이들을 ‘몰카’ 대상으로 삼고 있다.

여성 B씨(53)는 “여성들을 몰래 촬영하려 하는 손님들이 많아 정신적 불안을 겪고 있다”며 “그 사람들은 우리 얼굴이 나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찍어서 동영상 사이트 같은 곳에 파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렌즈가 보일 때마다 여성으로서의 수치심에 더해 아는 사람들에게 신분이 노출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여성 C씨(37)의 말이다.
“욕실에서 나왔는데 느낌이 이상하더라고요. 개어놓은 수건 사이에 휴대전화를 끼워놓고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한번 당하고 나니까 들어가면 무조건 휴대전화부터 찾게 돼요. 불안하니까요.”

30년 가까이 이곳에서 여성들과 함께해 온 포장마차. 이곳 주인 역시 갈 곳 없이 건물을 비워야 하는 처지다. 김경록 기자

30년 가까이 이곳에서 여성들과 함께해 온 포장마차. 이곳 주인 역시 갈 곳 없이 건물을 비워야 하는 처지다. 김경록 기자

여성들이 겪는 몰카범의 수법은 다양했다. 가장 흔한 방법의 하나가 옷걸이에 옷을 거는 척하며 윗옷 주머니에 카메라 렌즈를 내놓는 것이다. 휴대전화뿐 아니라 안경·가방·단추·사원증 등에 숨긴 위장형 초소형 카메라도 여러 번 봤다고 했다.

C씨는 “발견하면 장난이라며 넘어가고, 발견을 못 하면 어떻게 유출될지 모르는 것 아니냐”며 “파일 저장 경로가 복잡해져 영상을 삭제해도 이미 다른 곳에 저장한 건 아닌지 늘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동영상 사이트 등을 뒤지곤 한다. 검색창에 ‘업소녀’ 같은 단어를 넣어 찾아 보기도 한다.

몰카 피해가 워낙 자주 발생하다 보니 다양한 피해 방지 요령을 마련했다. 우선 휴대전화를 끄라고 하거나 몰래 끈다. 옷가지는 수건으로 덮는다. 가방과 신발은 방 밖에 둔다. 이들은 인터넷에서 몰카 탐지 방법을 검색하기도 한다. 공포감을 유발하는 상대에게는 몰래카메라 렌즈를 가린다.

B씨는 “유출이 무서워서 살겠느냐며 업소에 폐쇄회로TV(CCTV)를 달아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아예 대놓고 촬영하는 남성도 많다. 이들은 갑자기 욕실에 들어와 사진을 찍거나 신체 일부를 촬영하게 해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한다. 대기실에서 얼굴 바로 앞에 휴대전화를 들이대고 한 명씩 얼굴을 찍는 사람도 있다.

여성들은 극심한 피해에 시달리면서도 신고를 잘 못한다. B씨는 “휴대전화에 남은 사진이나 영상이 몰카 피해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성매매의 증거가 되기 때문에 삭제가 우선”이라고 하소연했다.

코 앞에 카메라 들이대고 ‘찰칵 찰칵’

인천 미추홀구 여성·가정문제 시민단체인 강강술래 측은 “관련 상담과 제보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관계자는 “성매매 중 불법 촬영으로 불법 유포가 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신고는 미미하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이곳에 접수된 성매매 여성 몰카 피해 사례는 10건 미만에 불과하다.

성매매 근절을 위해 노르딕 방식을 도입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 비슷한 청원이 지난해 4월부터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사진 웹사이트 캡쳐]

성매매 근절을 위해 노르딕 방식을 도입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 비슷한 청원이 지난해 4월부터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사진 웹사이트 캡쳐]

어렵게 상담을 요청해도 처벌까지 이어지긴 어렵다. 박성혜 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팀장은 “가해자가 불특정 대상인 경우가 많은 데다 조사 과정에서 신상정보가 알려져 포기하는 여성이 많다”고 말했다. 결국 이 여성들에게도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피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11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노르딕 방식을 도입하자는 글이 올라와 20여 일 만에 1만8000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자는 “성매매 여성을 함께 처벌하면 심각한 학대를 당해도 처벌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성 매수자와 포주만 처벌해야 탈성을 원하는 여성들이 성 산업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대 국회에서 성매매한 아동ㆍ청소년과 성인 여성을 형사처벌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법안 3건이 발의됐지만 모두 관련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윤덕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성단체와 학계에서 노르딕 방식이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며 “이 방식은 성매매 여성을 피해자로 보는데 왜 피해자로 봐야 하는지, 왜 한쪽만 처벌하는지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에 공감대를 형성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성매매 여성들은 성매매 중에 일어나는 폭력 등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며 “성매매 알선자 처벌, 성매매 여성 자활 지원 등이 선결돼야 도입 논의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5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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