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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의 옐로하우스 悲歌]⑪70년대 일본인 기생관광 붐…정부는 "애국 행위" 장려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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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1962년 생겨난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집창촌 속칭 ‘옐로하우스’가 재개발된다. ‘1월 말까지 모두 비우라’는 최후통첩을 받았지만 10여 개 업소의 성매매 여성 40여 명은 갈 곳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설연휴가 끝나면 강제 철거가 시작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면서 불상사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벼랑에 몰린 여성들이 마음속 깊이 담아뒀던 그들만의 얘기를 꺼냈다. 집창촌에서 30여년을 보낸 성매매 여성 B씨(53)의 증언을 ‘옐로하우스 비가(悲歌)’ 시리즈에서 소개한다.


B씨가 쓴 일기 내용. 그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해 가끔 일기를 쓴다. 최은경 기자

B씨가 쓴 일기 내용. 그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해 가끔 일기를 쓴다. 최은경 기자

옐로하우스 업소 내부에 들어가면 무릎 높이의 온돌방이 있다. 여성들이 ‘현관 이모’의 손에 이끌려 오는 남성들을 기다리는 대기실이다. 이곳에서 여성들과 수 차례 인터뷰한 후, 어느 날 B씨가 공책 한 권을 보여줬다. 글쓰기를 좋아해 가끔 일기를 쓴다고 한 것이 떠올랐다. 일기장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기자가 영상 촬영 기자와 함께 옐로하우스를 다녀간 뒤 B씨가 쓴 일기 내용이다.

“기자님들이 우리들 얘기를 들으러 오셨다.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같은 사람들인데 우리들 역시 많은 것들을 외면하며 살아온 것 같다. 우리들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고 이야기들을 뱉어내고,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관심을 가져준 기자님들이 고맙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우리를 알려야 할까.”

그는 그날 이후 묻어놓은 기억을 계속 더듬었다. B씨는 대구 자갈마당에서 인천 옐로하우스에 오기까지 20여 년 동안 전국의 여러 집창촌을 경험했다. 부산 완월동(현 서구 충무동) 집창촌 역시 그 가운데 한 곳이다.

부산 완월동 집창촌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매매 집결지다. 1900년대 일제가 항구 근처인 이곳에 집창촌을 조성한 이후 80년대까지 번성했다. 당시 업소가 150여 개, 종사 여성이 2500명을 넘었다. 성매매 여성이 2500명이라면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매일 여기로 몰려들었던 것일까.

2004년 성매매 특별법 시행 후 규모가 대폭 줄었다. 2015년 부산시와 서구청이 도시 재생사업에 나섰지만 45개 업소, 220명이 여전히 영업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집창촌, 부산 완월동 

부산발전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곳 역시 ‘의상실 종업원 구함’, ‘가정부 구함’ 같은 구인광고에 속아서 오거나 가정 폭력·성폭력 등을 겪은 뒤 가출해 업소생활을 하다 빚이 쌓여 온 여성이 많았다.

부산 완월동 성매매 업소와 여성 종사자 수.                                자료: 부산발전연구원 '완월동 창조적 재생 연구용역에 따른 보고서' (2015년)

부산 완월동 성매매 업소와 여성 종사자 수. 자료: 부산발전연구원 '완월동 창조적 재생 연구용역에 따른 보고서' (2015년)

B씨는 완월동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80년대 후반~90년대 후반을 이곳에서 보낸 셈이다.

“완월동이 워낙 규모가 컸어요. 잘 되는 업소는 거의 기업이었어요. ○○장·○○관 이렇게 불렀는데 업주들이 TV에 나오는 연예인들과도 잘 알고 재산이 몇십 억원대였어요. 이 세계에서 완월동 출신이라고 하면 우리끼리는 알아줬다니까요.”

이곳에서는 주로 일본인 단체관광객이나 야쿠자(일본의 조직폭력배)를 상대했다. 손님 10명 가운데 9명은 일본인이었다. 3박 4일 동안 함께 부산 남포동, 경기도 용인 민속촌, 제주도를 다니며 관광 가이드 노릇도 했다.

“야쿠자가 오면 부산의 폭력 조직이 접대했어요. 우리는 기생파티 하듯이 한복을 갖춰 입고 그들을 맞았습니다. 차밍스쿨과 함께 외부 사설학원에 다니며 일본어는 물론 다도·예의범절·걸음걸이까지 배웠어요. 일종의 외화벌이지요.” B씨는 아직도 일본어를 제법 한다.

이런 형태의 성매매는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저서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 국가와 권력은 어떻게 성을 거래해왔는가』에서 이런 내용을 밝혔다. “1970년대 일본인을 주 고객으로 하는 관광 기생업이란 명칭이 보편화했다. 일본인 관광객 수는 71년 9만6000여명에서 79년 65만여명으로 늘었으며 이 가운데 85% 이상이 남성이었다.”

부산 완월동 집창촌의 2014년 모습. [사진 부산발전연구원]

부산 완월동 집창촌의 2014년 모습. [사진 부산발전연구원]

또 강 교수는 같은 책에 “박정희 정권은 73년부터 매춘부들에게 허가증을 주어 호텔 출입을 자유롭게 했고 통행금지와 관계없이 영업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박 정권은 여행사들을 통해 ‘기생 관광’을 해외에 선전했을 뿐만 아니라 문교부 장관은 73년 6월 매매춘을 여성들의 애국적 행위로 장려하는 발언을 하였다”고 썼다.

강 교수는 책에서 78년 한국이 매매춘으로 일본인에게 벌어들인 수입이 700억원 정도라고 했다. 그는 『동맹 속의 섹스』(캐서린 문), 『한국의 여성운동: 어제와 오늘』(이효재), 『한국의 매춘』(박종성) 등을 참고했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던 정권의 관리 아래 여성의 성은 상품으로 거래됐다. 수출이 최고의 애국이었던 시절, 그들은 음지에서 외화를 벌어들였다. 집창촌은 법의 사각지대로 공인 받았기 때문인지 인신매매범이 활개를 쳤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늪으로 끌려들어가 평생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이 예사였다. 그들 중 일부는 현재도 포주로, 현관 이모로, 성매매 여성으로 살아간다. 구렁텅이에 묶여 있던 30년 세월이 그들에게서 바깥 세상과 어울릴 용기를 앗아갔다.

일본인을 상대로 한 ‘기생 관광’이 성행하다 보니 완월동 성매매 여성과 부산 태종대 신선바위에 간 일본인 관광객이 여성의 사진을 찍어주려다 벼랑 아래 떨어져 숨지는 사고도 났다(1976년). 95년 부산지검 강력부가 일본 야쿠자 100명에게 성매매를 해주기로 계약한 요정 업주를 구속하기도 했다. 이 업주는 4개월 동안 일본인 관광객에게 1인당 3만 엔을 받고 윤락 행위를 알선해 1500만 엔(당시 약 1억2000만원)을 벌어들였다.

“60대 일본인 노인 희롱에 ‘치 떨려’” 

동네 건달들은 B씨를 비롯한 완월동 여성들이 지나가면 ‘쪽발이(일본인을 비하해 부르는 말)’와 논다고 놀려댔다. “솔직히 자존심 상했지요.”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3월 1일에는 영업을 쉬었다.

이날 일본인 관광객이 오면 “오늘이 무슨 날인 줄 모르냐. 어딜 올라오느냐”며 욕하면서 돌려보냈다. 허탈한 사실은 얼마 지나고 나면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의 일본말)’를 외치며 다시 분주하게 일본인을 맞았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1989년 6월 29일자에 보도된 경찰의 요정 일제수사 기사. [중앙일보 캡처]

중앙일보 1989년 6월 29일자에 보도된 경찰의 요정 일제수사 기사. [중앙일보 캡처]

서울 명동 근처에서도 일본인을 상대하는 성매매 업소가 성행했다. 속칭 ‘다찌’라 불리는 이곳 여성들은 알선책에게 연락을 받고 호텔 같은 숙박업소에서 성매매를 했다. 이 다찌는 2012년까지도 언론에 등장했다. 서울 중구의 유명호텔인 ○○○호텔·○○호텔의 지배인이 ‘기생파티’를 한다며 다찌 여성들을 유명 고급 요정에 데려가곤 했다.

89년에는 서울시경이 기생파티 영업이 의심되는 유명 요정들을 대상으로 일제 수사(윤락행위방지법 위반)를 벌였다. 서울에서 여행사 회장, 요정 마담, 조직 폭력배 등이 ‘엔 벌이’ 성매매를 알선해 구속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제주도 역시 70·80년대 일본인을 상대로 한 기생관광이 활발했다.

“일본인들이 한국에 ‘현지처’를 많이 뒀어요. 저도 마담에게 60대 일본인 골프장 사장을 소개받았는데 솔직히 치가 떨렸어요. 쭈글쭈글한 노인이 제 코앞에서 ‘가와이네, 가와이네(귀엽다의 일본말)’ 하는데 나라 힘이 약하니까 어린 한국 아가씨들이 이런 일을 겪는구나 싶었어요. 그 서러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지 못할 겁니다. 높으신 분들은 몰랐을 테지요.”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ins.com

<1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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