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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개발됐다던 구제역, 왜 자꾸 재발하는 걸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26) 

경기도 안성 한우농장에서 구제역이 추가 발생했다. 정부는 구제역에 대한 위기경보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했다. 한우농장에서 농민이 한우들에게 먹이를 준 뒤 상태를 체크하고 있는 모습. 김성태 기자

경기도 안성 한우농장에서 구제역이 추가 발생했다. 정부는 구제역에 대한 위기경보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했다. 한우농장에서 농민이 한우들에게 먹이를 준 뒤 상태를 체크하고 있는 모습. 김성태 기자

얼마 전 구제역이 경기도 안성에서 또 발생했다. 과거의 악몽이 다시 재연될 조짐이다. 2000년 이후 10차례나 발생해 연례행사처럼 됐다. 이번에는 발생 며칠 만에 벌써 소 100여 마리가 도살처분 돼 축산농민의 시름이 깊어졌다.

구제역이란 동물의 입과 발에 증상이 나타나는 병이라 해 붙여진 이름이다. 소· 돼지·양·사슴 등 발굽이 갈라진 동물(우제류)에 발생하는 1급 전염병으로 병원균은 RNA 바이러스이며, 7개의 혈청형(O· A·C형 등)이 알려져 있다. 동물의 입· 코·유두·발굽 등에 물집이 생기며, 체온상승·식욕부진·산유량 감소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공기·물·사료 등으로 전파되며 동물 질병 중에서 전염력이 가장 강해 한번 발생하면 경제적 손실이 막대하기 때문에 국제수역사무국에서 A급 질병으로 분류하며, 대부분의 국가도 1급 전염병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 바이러스는 숙주역(대상 동물)이 넓고 감염력도 강해 철저한 관리가 요구된다. 감염되고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동물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6~7일 정도라 알려져 있다. 양이나 염소 등은 증상이 경미해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 이것이 오히려 전염성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구제역 감염 고기 먹어도 인체엔 무해

감염동물은 증상을 나타내기 전에도 체외로 많은 바이러스를 배출하기 때문에 방역 전에 전파가 쉽게 일어날 수 있어 대책 마련을 더욱 어렵게 한다. 소·양 등은 호흡기로, 돼지는 소화기를 통해 감염이 잘 일어난다. 사람에게는 전염될 가능성은 낮으며 또한 가열(50도 정도)하면 쉽게 사멸되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이러스성 질병의 경우 어떤 종류나 마찬가지지만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발병 10여일 지나 스스로 체내에서 항체가 생기는 자연치유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치유됐을 경우에도 번식력 감소, 성장지연 등의 후유증으로 경제성이 떨어져 폐사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제역의 감염을 막기는 쉽지 않다. 사료·물·공기 접촉으로 쉽게 옮겨 다니기 때문에 유일한 예방법은 철저한 감염원 차단과 백신 접종뿐이다. 백신의 경우에도 바이러스의 혈청형 사이에 여러 변종이 있어 해당 백신의 생산과 선택에 어려움이 따른다. 한 혈청형 백신은 다른 혈청형에는 면역작용을 나타내지 않아 접종해도 효과가 없다. 심지어 같은 혈청형에 속해도 유전자 서열에 30%까지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구제역 백신은 혈청형마다 개별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어느 마을에 설치된 비닐하우스. 이 비닐하우스는 마을 주민들이 구제역 감염으로 살처분 된 소들을 위해 매몰지에 설치한 것이다. [중앙포토]

어느 마을에 설치된 비닐하우스. 이 비닐하우스는 마을 주민들이 구제역 감염으로 살처분 된 소들을 위해 매몰지에 설치한 것이다. [중앙포토]

국가 정책상 예방접종을 꺼리는 일면도 있다. 일단 예방접종을 실시하면 구제역 통제 불능국가로 낙인찍히는 동시에 청정지역의 지위를 상실하게 돼 수출길이 막히고, 덩달아 국내 소비가 급감하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딜레마다. 또 백신 가격이 비싸 어느 정도 매몰 처리가 오히려 경비를 더 절감하는 효과를 낼 수도 있어 접종을 꺼리는 경향마저 있다.

그래서 발생 초기에는 전파를 막는 데 주력해 수십만 마리를 한꺼번에 도살 처분하는 경제적 손실까지 감수한다. 그러나 2011년 이후부터는 우리도 백신을 접종하는 정책으로 바뀌어 사전에 대비하고 있으나, 그 효과는 아직 그렇게 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발생지역 인근의 소나 돼지가 발병하지 않았는데도 사전 차단을 빌미로 산 채로 매몰하는 방법이 과연 옳은가 하는 윤리적 문제도 있다. 발생 인근 500m 이내는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도살처분 대상이 된다. 이런 야만적인 잔인성에 소유주나 관계 종사자의 정신적 충격이 크다. 심할 경우 그 충격과 트라우마로 정신적 치료를 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에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것은 1934년이었으나 그동안 잠잠하다가 2000년 경기도 파주 지방에 발생하여 큰 재산상의 피해를 줬다. 2002년에는 102 개 농가에서 16만 두가 도살 처분되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2010년에는 340만여 마리의 소·돼지가 도살처분 돼 보상비와 매몰 등의 관리비용에 2조 원이상의 경비가 소요됐다.

당시 한국의 우제류 수출실적은 1년에 20억 원 정도에 불과해 수출에 미치는 경제적 손실이 미미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당시 백신 사용 제한 등 정부의 초기 대응이 미숙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시 관계자와 공수의가 관내 한 축산농가를 방문 구제역 백신접종을 하고 있다. 백신 접종으로 면역이 되어있어 걱정이 없다던 보건당국의 발표와 달리 항체 형성이 한 자리 숫자에 불과하다는 발표도 있었다. [중앙포토]

시 관계자와 공수의가 관내 한 축산농가를 방문 구제역 백신접종을 하고 있다. 백신 접종으로 면역이 되어있어 걱정이 없다던 보건당국의 발표와 달리 항체 형성이 한 자리 숫자에 불과하다는 발표도 있었다. [중앙포토]

이번은 아직 발생 초기라 그 피해는 가늠하기 힘들다. 2년 전에도 백신 접종으로 면역이 돼 걱정 없다던 보건당국의 발표와는 달리 지역에 따라서는 항체 형성이 한 자리 숫자에 불과했다. 충북 보은의 경우가 그랬다. 심지어 항체 형성률이 높았다는 곳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해 ‘물 백신’ 논란도 일었다. 당시 경기 연천에서는 A형 항체 형성률이 90%이라 했음에도 A형 구제역이 발생해 백신에 대한 믿음이 깨져버렸었다.

구제역 청정 국가 덴마크

정부의 말을 듣고 제대로 접종했는데도 구제역에 걸렸다는 농가의 하소연이 잇따랐다. 정부가 배포한 접종 매뉴얼에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드러나 기존의 접종결과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접종매뉴얼도 통일되지 않고 뒤죽박죽인 것도 문제였다. 거기다 백신 접종에 따른 착유량의 감소, 유산 등의 부작용을 우려해 농민들이 접종을 꺼리는 부분도 한몫했다.

이러한 혼란에 대해 당국은 문제가 뭐였는지조차 제대로 파악을 못 하는 듯해 농민의 불안은 더욱 가중됐다. 이번에도 이전의 대형악몽이 재현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000년 이후 9차례 발생한 구제역 관련 비용이 3조 3000억 원에 달하고, 최근 3년간 백신 공급에 수천억 원이 소요됐다. 축산 선진국 덴마크는 1944년 이후 한건의 구제역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대처가 얼마나 후진적이고 허술한지가 짐작이 간다. 농민의 관리부실, 열악한 환경과 영세성도 이런 잦은 재발에 한몫했을 거다.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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