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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캐슬 음악감독 "최고애정 캐릭터 혜나 죽은 뒤 몸살 앓아"

중앙일보

입력

'SKY캐슬'의 한 장면

'SKY캐슬'의 한 장면

 드라마 ‘SKY캐슬’(JTBC)의 성공에 음악도 큰 몫 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중독성 강한 엔딩곡 ‘We All Lie’는 물론, 적재적소에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과 긴장감을 조성하는 여백의 미(美) 등 드라마 음악은 그간 드라마 문법에선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시도로 시청자들의 귀를 사로잡고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SKY캐슬’의 음악을 진두지휘한 김태성 음악감독은 ‘최종병기 활’‘명량’‘검은 사제들’‘1987’‘국가부도의 날’‘극한직업’등 수많은 영화의 선율을 만들어온 충무로의 스타 음악감독이다. 향후 3년간 영화음악 작업이 잡혀있을 정도로 그를 찾는 이들이 많다. 그는 수많은 영화·드라마 작업을 해왔지만 ‘SKY캐슬’만큼 ‘힘들고 기가 많이 빨린’작품은 없었다고 했다.
최적의 음악을 찾기 위해 수도 없이 캐릭터 속을 들락날락했고, 너무나 ‘애정’했던 혜나(김보라)가 죽었을 땐 몸살을 앓기도 했다는 그에게 이 드라마는 너무나 특별했던 경험이었다. 심혈을 기울여 선정하고 만든 한 곡 한 곡을 통해 드라마의 서브텍스트를 끄집어냈다는 그의 말을 듣고서 결심했다. 음악에 오롯이 집중한 채 ‘SKY캐슬’을 다시 한번 정주행하기로.

'SKY캐슬'의 김태성 음악감독 [사진 본인제공]

'SKY캐슬'의 김태성 음악감독 [사진 본인제공]

‘We All Lie’가 히트곡이 됐다.  

 “작사·작곡은 다른 사람이 했고 난 방향성을 잡아줬다. 엔딩에서 시청자의 뒤통수를 때리는 무언가를 담으려 했다. 드라마를 관통하는 거짓말·진실·욕망의 텍스트가 혼재된 음악에 다같이 여기서 탈출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한글 가사는 너무 노골적이어서 영어로 했다. 기본 코드 네 개로 구성됐다. 말 그대로 시나리오에서 길어올린 음악이다. 슬로우 버전이 원곡이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교육문제 관심많아 참여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아 참여하게 됐다. 같이 일하는 팀원들은 주부 상대의 드라마고, 시나리오가 내 색깔과 안맞는다며 반대했지만, 밀어붙였다. 내가 안했다면 이 정도의 시청률이 안나왔을 거란 확신이 있다.”  

컨셉트는 어떻게 잡았나.  

“시놉을 통해 14부에 혜나가 죽고 우주(찬희)가 살인범으로 몰린다는 것까지 알고 시작했다. 영화든 드라마든 가장 집착하는 건 엔딩이다. 다음 회를 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트릭과 텐션을 어떻게 연출할지 신경을 많이 쓴다. 캐릭터들이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중요한 순간에 음악을 비틀거나 빼 버리는 작전을 짰다.”

'SKY캐슬'에서 이명주가 자살하는 장면

'SKY캐슬'에서 이명주가 자살하는 장면

명주 자살신 음악 뺀 건 대단한 용기, 불안해하는 감독 설득   

이명주(김정난)의 자살 시퀀스에 음악을 빼버린 건, 파격적이었다.  

“드라마 문법이 아니라며 다들 불안해했지만, 음악을 비워두자고 끝까지 설득했다. 사일런스도 음악이다. 총소리가 난 뒤 ‘We All Lie’가 흐르는데 이 드라마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대충 만든 드라마가 아니란 걸 음악으로 느껴지게 하고 싶었다. 걱정하는 감독에게 ‘용기 내지 않으면 다른 드라마와 똑같아진다’고 설득했다.”  

14회 중심으로 음악을 설계했다고.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한서진(염정아)과 김주영(김서형), 그리고 혜나 세 캐릭터를 붙잡고 음악을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혜나가 핵심 캐릭터라 해석했다. 혜나의 죽음을 기점으로 사람들이 변화하고 각성하고 파멸한다. 구조적 파문을 몰고 오는 게 혜나다. 음악 설계에도 반전은 중요하다. 드라마의 본색이 드러나기 전까지 행복한 음악을 배치해놓았다가 그 순간부터 그런 음악을 다 없애버렸다.”  

'SKY캐슬'의 혜나

'SKY캐슬'의 혜나

가장 애착을 느낀 캐릭터 또한 혜나인가.  

“그렇다. 출생의 비밀도 있고 병든 엄마를 수발하는 캔디형 캐릭터인데, 자신을 파멸로 몰고가는 욕구도 있다. 전형적인 주인공 캐릭터인데, 그렇지 않다는 게 재미있었다. 시한폭탄 같은 혜나를 입체적으로 가져가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라벨의 어미거위 모음곡 중 ‘요정의 정원’을 붙였다. SKY캐슬이란 공간을 요정의 정원으로 생각해 곡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에너지를 혜나 캐릭터에 넣었다.”  

가장 애착한 혜나 죽은 뒤 몸살 앓아, SKY 캐슬은 혜나의 '요정의 정원'  

그만큼 감정이입도 많이 했겠다.    

“혜나가 사람들의 각성을 위해 소모되는 캐릭터가 아니길 바랐다. 혜나 서사에 중점적으로 음악을 붙였다. 14회 혜나가 죽었을 때 가장 힘들었다. 몸살까지 났다.”    

‘요정의 정원’이 또 한번 등장하는 신이 있는데.  

“혜나의 죽음을 계기로 각성한 강준상(정준호)이 자식의 출세 밖에 모르는 엄마(정애리)와 다투는 장면이다. 혜나가 죽기 직전 나왔던 ‘요정의 정원’의 성가 버전을 깔았다. 혜나의 영혼과 에너지가 이 가족을 뒤흔들고 기적을 가져온다는 걸 서브텍스트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편의점에서 훔친 과자봉지를 터뜨리며 노는 신의 음악도 특이했다.      

“슬프고, 부조리하고, 안쓰럽고 복합적 감정이 드는 장면이다. 이게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생각에 몽환적 음악을 깔았다. 음악으로 시청자들에게 거대한 물음표를 던졌다.”    

그런 식으로 기존 패턴에서 벗어난 음악을 사용한 장면을 꼽는다면.  

“김주영이 영재(송건희)에게 부모가 가장 행복한 순간에 죽은 삼형제 얘기를 해줄 때 보통 긴장 음악을 까는데 난 왈츠풍의 동화같은 음악을 깔았다. 예서의 명상실 장면에서도 긴장 음악이 아닌 진짜 명상음악을 깔았다. 희한한 음악으로 텍스트가 입체적으로 튀어나오길 바랐다.”  

'SKY캐슬'의 김주영

'SKY캐슬'의 김주영

김주영 음악은 '마왕', 대본 안보고도 작가의 마음과 일치  

김주영의 주제곡은 슈베르트의 ‘마왕’ 아닌가.    

“김주영이 '마왕'이란 음악을 듣고 있다고 대본에 적혀있는데, 대본을 못본 상태에서 ‘마왕’을 집어넣었다. 감독이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며 놀라더라. 대본도 안보여줬는데 어떻게 그 곡을 붙였냐며. 작가의 의도와 내 의도가 맞아떨어진 거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애초에 김주영은 강력한 절대악이자 마왕이라 생각했다. 권위적이고 원칙주의적인 모습이 독일 나치스 느낌도 나고 해서 슈베르트의  ‘마왕’을 골랐다. 아이를 데려가려는 마왕과 두려움에 떠는 아이, 아이를 안심시키려는 아버지의 대화로 이뤄져 있는 곡인데 마왕에 끌려간 아이가 죽는다. 마왕에 끌려가는 아이에 예서 뿐 아니라 여러 캐릭터를 대입시켜봤다.”  

 -절대악으로만 해석하기엔 김주영은 너무나 흥미로운 캐릭터 아닌가.    

“그렇다. 처음에 제안받았을 땐, 너무 교훈적인 드라마가 아닌가 걱정했다. 그런데 김주영이란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캐릭터가 있더라. 김주영의 매력 때문에 이 드라마를 선택한 것도 크다.”

'SKY캐슬'의 차교수

'SKY캐슬'의 차교수

 경직된 차교수의 '파국'을 과장해 표현하기 위해 클래식 선택  

유독 차교수(김병철)와 관련한 장면에 클래식이 많이 등장한다.  

“차교수는 권위적이고 경직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무너지는 포인트가 재밌을 거 같아 애초에 그의 음악을 클래식으로 정했다. 어느 순간 모든 게 다 무너지는 구조로 만든 것이다. 그의 교육관이 자기 힘에 못이겨 무너지는 걸 표현하기 위해 라벨의 ‘볼레로’를 넣었다. ‘볼레로’는 끝내 선율이 무너지는 형태의 곡이다. ‘차파국’이란 별명에 어울리는 곡이다.”  

'SKY캐슬'의 차교수

'SKY캐슬'의 차교수

모차르트의 ‘레퀴엠’(장송곡)으로 뭘 표현하려 했나.  

“차교수의 절망과 파국을 극단적으로 과장해 표현하고 싶었다. 독서토론회가 해산되는 장면에 레퀴엠이 나오는데 그가 애착 갖고 하던 걸 무덤 속으로 집어넣고 싶었다.”    

'SKY캐슬'에서 노승혜가 스터디룸을 망치로 부수는 장면

'SKY캐슬'에서 노승혜가 스터디룸을 망치로 부수는 장면

노승혜(윤세아)가 남편 차교수가 만든 스터디룸을 망치로 허물 때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흘러나온다.  

“차교수가 독서토론 주제로 선정한 책 제목을 보고 음악으로 쓰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마침 노승혜가 스터디룸을 부수는 장면이 있더라. 슬픈 장면일 수 있지만, 그 곡에 노승혜의 망치질이 변화와 각성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부순 벽 틈새로 비치는 햇빛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일출 장면을 연상시킨다. 변화를 가져오는 노승혜의 망치질은 선사시대 인류의 도구가 우주선으로 변하는 영화 속 시퀀스와 겹쳐보인다. 스탠리 큐브릭에 대한 오마주로 볼 수도 있다.”

'SKY캐슬'에서 차교수와 딸 세리가 공항에서 만나는 장면

'SKY캐슬'에서 차교수와 딸 세리가 공항에서 만나는 장면

차교수와 딸 세리(박유나)의 공항 신에서 영화 ‘라붐’(1980, 클로드 피노토 감독)의 ‘리얼리티’가 흘러나올 땐,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차교수는 모든 게 극단적인 사람이다. 밥도 12첩 반상 아니면 라면이다. 자신이 애정하는 인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욕망의 화신인 그가 변한다면 이 사회도 조금은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있다. 개인적으로 차교수가 성장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SKY캐슬'에서 혜나가 추락한 직후 눈물을 흘리는 모습

'SKY캐슬'에서 혜나가 추락한 직후 눈물을 흘리는 모습

혜나의 죽음이 최고의 명장면, 지금도 계속 돌려봐  

'SKY캐슬'에서 어른들이 개싸움을 벌이는 장면

'SKY캐슬'에서 어른들이 개싸움을 벌이는 장면

혜나의 죽음 직후 가족끼리 난장판을 벌이는 장면의 음악도 인상적이었는데.

“너무나 좋아하는 영화 ‘대학살의 신’(2012,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연상됐다. 싸움신이 음악없이 건조하게 흘렀던 영화와 달리 이건 드라마니까 서민적인 트로트 코드를 넣어 ‘찌질’하게 묘사하고 싶었다. 어른들이 욕망에 사로잡혀 개싸움을 벌이는 후반부는 탱고를 넣었다.”

소장하고 싶은 명장면을 꼽는다면.  

“혜나가 죽는 장면이다. 그걸 기본으로 음악을 만들었고, 지금도 계속 돌려본다. 혜나가 추락하고 난 뒤 그의 주제곡 ‘요정의 정원’이 거꾸로 돌아가고, 혜나의 눈에서 눈물 한방울 떨어질 때 처음으로 ‘We All Lie’의 슬로우 버전이 흐른다. 최고의 명장면이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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