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대 친구·동지로 함께 헤쳐 갔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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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금도 돌아가신 남편이 현관에 들어오시면서 '여보, 나 왔어-' 할 것만 같아요. 노래를 워낙 즐겨 부르던 그 사람이 떠올라 KBS '가요무대'는 아직도 혼자 볼 자신이 없어요. 세월이 약이라는데 완치약은 아닌 것 같습니다."

5선 의원이자 김대중 정부 시절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고 박정수씨의 부인 이범준(73)씨가 2003년 암으로 숨진 남편(당시 71세)과의 50여 년 인연을 소개한 '함께 못다 부른 노래'(경제풍월)를 펴냈다.

10대 시절 처음 만나 결혼에 골인한 두 사람은 1965년 미국 아메리칸대에서 같은 날 박사 학위를 받은 '부부 정치학 박사 1호'다. 귀국 후 남편은 국회 외무위원장과 외교부 장관, 아내는 국제정치학회장과 외무부 외교정책자문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교수.학장.국회의원도 번갈아 했다. 고인은 생전에 회고록 내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회고록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기록인데 뜻하지 않게 남들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뜻을 어기게 된 건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6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는 격동의 시대를 친구이자 연인, 동지이자 파트너로서 함께 헤쳐온 우리 부부의 이야기가 요즘 젊은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 같아서 용기를 냈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쭉 써온 30여 권 분량의 가계부 겸 일기장이 없었다면 560여 쪽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분량의 회고록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원고를 쓰는 7개월 동안 컴퓨터 자판이 흐르는 눈물로 흠뻑 젖기 일쑤였다고 한다.

"3년여 동안 암투병했던 시절이 떠오를 때 가장 마음이 아팠어요. 남편은 간호사들이 '이런 암 환자는 처음 본다'고 했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아무 내색 없이 견뎌냈지요. 그리고는 저한테 노상 '미안해, 미안해, 당신한테 정말 미안해…' 이 말만 했어요."

박 전 장관은 1969년 한국여기자클럽이 선정한 '한국의 공처가 베스트10', 79년 주간여성이 뽑은 '한국의 외조남편 베스트10' 등에 올랐을 만큼 '아내 사랑'이 지극하기로도 유명했다.

이씨는 박 전 장관과의 사이에 아들(46.변호사) 하나를 뒀으며 서울 방배동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회고록을 계기로 한.러 외교분쟁 때문에 98년 외교부 장관으로 임명된 지 다섯달 만에 경질된 일, 신한국당에서 새정치국민회의로 당적을 바꾼 일 등과 관련된 일부의 오해가 다소나마 풀렸으면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부부들이 인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갈 수 있는 배우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인지를 느꼈으면 합니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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