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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기술, 성공 사례 쌓아가면 정치 개혁에 도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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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호 06면

박형준

박형준

요즘 여의도 정가에서 야권을 중심으로 때 아닌 블록체인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 패배 후 남경필 전 경기지사는 일본 도쿄대에서 블록체인과 관련한 공동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독일 연수 중인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최근 블록체인 전자정부를 운영 중인 에스토니아를 방문하는 등 정책 결정·집행 과정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박형준 전 국회 사무총장 #대표자의 자의적 권력 행사 막고 #보안 강화돼 정확한 여론 반영 가능 #자유 중시 보수 야당이 더 적극적 #청년 정치 참여도 활발해질 것

나아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는 당 강령에 ‘블록체인 정당’을 명시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나섰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JTBC ‘썰전’ 패널인 박형준(사진) 전 국회 사무총장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유권자와 대표자 간의 괴리로 인해 생기는 정치 불신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권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게 유권자와 그들이 선출한 국회의원 등 대표자와의 관계에 근본적 변화가 가능해서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유권자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가 가능해지면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임받은 대표자들이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걸 제어할 수 있다. 나아가 유권자들이 직접 주요 정책 결정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나.
“먼저 보안이 대폭 강화된 전자투표 기반을 만든 뒤 전문가 의견과 일반 유권자 생각이 교류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탄탄한 전문가 시스템 없이는 단순 댓글 수준에 불과할 뿐이다. 탈원전 공론화 작업 때처럼 굳이 500명이 모여 합숙할 필요도 없다.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공론 형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요 정책을 이런 공론의 장에서 숙의를 거쳐 당원과 유권자 투표로 결정하고 그들을 대표할 대표자도 뽑자는 거다.”
전자투표제와는 뭐가 다른가.
“기존 방식은 조작이 용이하고 늘 동원 경쟁이 벌어진다. 분산형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전자투표를 할 경우 보안이 현저하게 강화되고 유권자 의사도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반영할 수 있다.”
주요 정책을 블록체인 전자투표로 확정하고 그걸 대표자가 따르게 하자는 건가.
“순수 블록체인 기반 정당 가운데 그런 실험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호주 정당인 ‘플럭스(Flux)’가 대표적이다. 참여와 숙의를 거쳐 다수가 지지하는 의견을 당의 정책으로 확정하는 시스템이다. 스페인 ‘포데모스(Podemos)’의 경우 의원들이 전자투표를 통해 결정된 정책을 함부로 바꾸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까지 만들어 놨다.”
직접민주주의를 하자는 말로 들리는데.
“아니다. 역사적으로 대의제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보다 우월한 제도다. 직접민주주의가 이를 대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직접민주주의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아무리 숙의하더라도 포퓰리즘에 빠질 위험이 크다. 또한 현대사회에서는 의사 결정 이후 집행 과정이 더 복잡한데 유권자가 집행 과정까지 일일이 개입하긴 힘들다. 대표자가 필요한 이유다.”
여당보다 보수 야당이 적극적인 이유는.
“블록체인 기술의 이념적 배경은 자유와 권력 분산이다. 권력은 기본적으로 집중화·수직화 경향을 띠고 있다. 평등주의 성향이 강한 좌파보다 자유를 중시하는 우파가 블록체인 도입에 더 적극적인 이유다. 자유주의는 권력이 덜 간섭하고 개인 의사가 더 자유롭게 표출돼야 한다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거래 비용을 대폭 줄이고, 개인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보호하며,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표출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다.”
정치개혁 포장 수단이란 우려도 있다.
“맞다. 당장 블록체인 기술을 정치개혁에 전면적으로 도입하려는 건 과욕이다. 정치개혁이란 명분에 이용만 하거나 특정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 브랜드로 삼으려 할 경우 자칫 미래 가능성마저 사장될 수 있다. 오히려 정당과 지자체·기업 등이 작은 실험들을 통해 성공 사례를 축적해 나갈 때 ‘결정적 변화(Tipping point)’를 만들어낼 수 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정책 결정을 하면 저절로 유권자들이 우르르 몰려들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청년의 정치 참여에도 도움이 될 듯싶다.
“그러잖아도 테스트 베드(test bed·시험 무대) 차원에서 고민 중이다. 청년 커뮤니티가 숙의를 통해 공론을 형성한 뒤 커뮤니티에서 돋보이는 사람을 청년 대표로 선출하고 참여한 청년들에게는 코인이나 배지 등을 지급할 경우 청년 정치 참여가 더욱 활발해질 수 있을 거다.”

차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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