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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하늘에 ‘구름 씨앗’ 24발 살포…비는 내리지 않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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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호 07면

25일 오전 6시30분 전북 군산시 군산항. 어둠 속에서 64m 길이의 기상관측선 ‘기상 1호’ 선원들이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오전에 예정된 인공강우 실험을 관측하기 위해서다. 당초 충남 서산시 대산항에서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기상 조건이 바뀌면서 군산으로 출항 지점이 급하게 변경됐다. 기상청과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자들은 갑판 위에 설치된 각종 기상, 미세먼지 관측 장비들을 체크하고 있었다.

미세먼지 줄이기 인공강우 실험 현장 #구름 속에 연소탄 터트렸지만 #유의미한 기상 변화 관측 안 돼 #기상청 “성공·실패 판단하기보다 #미세먼지에 미치는 영향 관찰”

오전 7시, 모든 준비를 마친 기상 1호가 서해를 향해 출발했다. 날이 밝아오면서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름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김윤재 국립기상과학원 지구시스템연구과장은 “인공강우 실험을 하려면 구름 두께가 1㎞는 돼야 하는데, 현재 고도 1~2㎞ 사이에 습도가 증가하고 있어 실험 조건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인공강우 실험을 총지휘하기 위해 배에 탄 김종석 기상청장은 “구름 상태가 인공강우 실험을 할 수 있는 조건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배 위에서 관측한 초미세먼지 농도는 ㎥당 9㎍(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으로 ‘좋음(15㎍/㎥ 이하)’ 수준이었다.

3시간쯤 지났을까. 하늘에서 작은 항공기가 배 위를 지나갔다. 이른바 ‘구름 씨앗’으로 불리는 인공강우 물질을 뿌리는 기상항공기다. 기상항공기는 구름 상층부에서 인공강우 물질인 요오드화은(AgI) 연소탄을 터뜨리기 위해 이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인공강우는 구름 속에 강수 입자를 성장시킬 수 있는 구름 씨앗을 살포해 빗방울을 성장시켜 비가 내리게 하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 돌멩이를 눈 위에 굴려 눈사람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이날 인공강우 실험은 하늘의 기상항공기와 바다의 기상관측선, 육지의 모바일기상관측차량 등 육·해·공 합동작전으로 이뤄졌다. 이렇게 대규모로 서해상에서 인공강우 실험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실험 방식은 간단하다. 기상항공기가 배에서 60km가량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 구름씨앗을 뿌리고 구름의 발달과 강수 생성 과정을 관측한다. 또 풍하 방향(바람이 부는 아래쪽)을 따라 바다에서는 기상관측선이, 육지에서는 모바일기상관측차량이 강수 여부 등 인공강우 실험에 따른 기상 변화를 관측한다. 국립환경과학원은 해양의 기상관측선과 내륙의 도시 대기 측정소 등에서 미세먼지를 관측하고, 저감 효과를 분석한다.

오전 11시30분, 한 시간에 걸쳐 24발의 연소탄(요오드화은 3.6㎏)을 모두 터뜨린 기상항공기가 다시 배 위를 돌더니 김포공항으로 돌아갔다. 한 발에 30만원씩 총 720만원을 구름에 뿌린 셈이다. 기상관측선에서는 한 시간 간격으로 하늘의 기상 상태를 분석하는 라디오존데를 풍선에 매달아 띄웠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기대했던 비는 오지 않았다. 기상청 상황판의 강수량도 ‘0㎜’에 머물러 있었다. 김 과장은 “강수 현상을 포함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름을 눈으로 관측했으나 실제 강수를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초미세먼지 농도 역시 유의미한 변화를 관찰하지 못했다. 내륙에서는 일부 기상 변화가 관측되기도 했다. 오후 1시쯤 전남 영광의 모바일기상관측차량에서 관측자가 약한 안개비를 목측(눈으로 관측)했다. 하지만 이 현상이 실제 인공강우 실험에 따른 효과인지는 추가 분석이 필요한 상황이다. 주상원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장은 “이번 실험을 성공이냐 실패냐고 판단하기보다는 구름 내에서 물방울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측하고, 인공강우 실험이 미세먼지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군산=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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