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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는 아들 부자? 동물은 맞고 사람은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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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호 26면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아들·딸이면 금메달, 아들·아들이면 은메달, 딸·딸이면 ‘목메달’이라는 농담이 한때 있었다. 아들은 최소 은메달이었다. 남아선호사상이 빚어낸 1970년대 우스개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다. 국내 30대 부부는 남녀 모두 아들보다 딸을 25% 더 원한다. 대를 잇고 부모 봉양하던 아들시대가 사라지고 소통 잘하는 딸시대가 됐다. 원한다고 딸을 가질 수 있을까. 아들만 줄줄이 있는 집은 또 아들, 딸 부잣집은 또 딸 아닐까. 부부가 노력하면 될까. 아니면 동전 던지듯 순전히 운에 맡겨야 할까.

자기 DNA 많이 물려주게 진화 #동물 수컷, 암수 정자 비율 조절 #암컷은 유리한 상대 고를 수 있어 #인간 성비 조절 유전자 안 밝혀져 #딸·아들 과학적 구분법 있지만 #정자분리, 인공수정-배아선별 #혈우병·근육무력증 등 유전병 #의학적으로 필요할 때만 허용

지금까지는 집안 내력과 음식에 따라 엄마 몸 상태가 달라지고 이것이 아들·딸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들 귀한 집에서 딸만 계속 낳으면 장모는 ‘사위 볼 낯이 없다’고 했다. 반면 사위는 아들·딸 정자를 50대50으로 공급했으니 ‘죄가 없다’고 당당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장모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사위, 즉 수컷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동물연구가 나왔다. 수컷 상태에 따라 새끼들 성비율이 변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수컷이 암수 결정에 더 많은 영향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영국 옥스퍼드대학 동물학과 연구팀은 들쥐 58마리를 대상으로 수컷이 새끼들 암수비율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조사했다. 수컷 정액 속에는 두 종류 정자가 있다. 수컷정자(Y)와 암컷정자(X)다. 둘 중 하나가 난자(X)와 만나서 수컷(XY)이나 암컷(XX)이 된다. 지금까지는 수컷정자(Y), 암컷정자(X)는 50대50 불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수컷들 특성에 따라 정액 속 암수 정자비율이 달라지고 새끼들 암수비율도 변했다. 이런 현상은 여러 동물(들쥐·영양·돼지)에서 관찰된다. 어떤 수컷들이 수컷(Y)정자가 많을까. 바로 ‘카사노바’ 수컷들, 즉 많은 암컷들과 활발히 짝짓기를 해서 많은 새끼를 낳는 놈들이다. 수컷이 변화시키는 폭은 8%다. 반면 암컷이 변화시키는 범위는 4.5%다. 암수 모두 특성에 따라 새끼들 성비율을 변화시킨다는 이야기다. 동물들은 왜 새끼 암수를 고르려는 걸까. 동물 진화에 이게 왜 필요할까.

동물 암수는 모두 자기 DNA를 후손에 많이 퍼트리려 한다.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새끼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암수는 수컷 새끼를 낳는 것이 유리하다. 왜냐면 수컷은 이곳저곳에 ‘쉽게’ 정자만 뿌리면 자기 DNA가 빨리 퍼져 나가기 때문이다. 반면 새끼를 적게 낳는 암수는 암컷새끼가 유리하다. 암컷 본인은 많이 낳지 못하지만, 많이 낳는 수컷을 ‘고를 수’ 있다. 이 경우 부모 DNA가 암컷새끼를 통해 그 아래 새끼들에게 전달돼 퍼진다. 결국 암수 모두 자기 DNA를 많이 퍼트리기 위해 새끼들 성별을 고른다는 이야기다. 소위 ‘트리버-윌라드’ 가설이다.

이 가설에서는 그동안 암컷 역할이 강조됐다. 하지만 이번 옥스퍼드대학 연구로 수컷들이 오히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 가설이 인간에게도 적용될까. 현대 사회에서 자식을 많이 낳아도 키울 수 있는, 즉 ‘부자’들은 아들이 많다는 속설이 사실일까. 하지만 이 가설은 짝짓기 상대를 마음대로 고르고 쉽게 바꿀 수 있는 집단생활동물, 그것도 일부 동물 이야기다. 이 가설이 한 사람과 평생을 해로하는 인간에게도 적용될까.

최근 연구는 노(No)다. 2018년 네이처 자매지(사이언티픽 리포트)는 아들·딸 선호도는 사회경제력 상태에 따르지 않고, 성별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여성들은 강력히 딸을, 남성들은 대체로 아들을 선호했다. 엄마는 평생 친구인 딸을, 아버지는 대를 잇는 아들을 선호한다는 의미다. 즉, 동물에게 보이는 ‘부모 특성별’ 새끼 암수 고르기가 인간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럼 옥스퍼드대학 연구에서처럼, 동물들에게는 있는 수컷의 XY 정자비율 변화기술이 인간에게는 없다는 이야기인가. 그럼 딸 부잣집은 우연의 연속인가. 그럼 그동안 알려졌던 ‘아들 낳는 비법’은 모두 근거 없는 이야기인가.

아들에게만 나타나는 유전병 있어

아들 낳는 유전자가 따로 있을까. 딸 부잣집을 보면 그런 유전자가 있는 듯하다. 더구나 동물들은 본인특성(유전자)에 따라 새끼 성별을 고른다. 동물에게 있으면 인간에게도 아들·딸 결정 유전자가 ‘아직’ 남아 있을까. 답은 ‘모른다’다. 피부색 하나에 관련된 유전자만 125개다. 하물며 아들·딸 결정 유전자를 밝힌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옛 여인들은 대를 잇는 아들이 절실했다. 기괴한 비법들이 알려져 왔다. ‘아들 많은 집 부엌칼을 훔쳐서 작은 도끼로 만들어 허리에 차고 다녀라, 금줄에 매달린 고추를 삶아 먹어라’ 등등이다. 도끼가 아들을 낳게 한다는 건 가능성이 없다 치자. 하지만 고추를 삶아 먹으면 혹시 여성 질 환경이 변화되는 건 아닐까. 먹는 음식은 세포상태를 변화시키니 알칼리 음식이 Y정자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대부분 ‘Y정자가 산성에 약하다’는 70년대 한 논문(쉐틀즈박사)에서 출발한 추측이다. 시험관 속 관찰일 뿐이다. 실제 몸과는 천차만별이다. 대규모 실험으로 ‘확실히’ 증명된 연구가 없다. 그럼 현재 과학적으로 증명된 아들·딸 구분 방법은 무엇인가. 두 가지가 있다. 정자분리와 인공수정-배아선별이다. 모두 의학적으로 꼭 필요할 때만 허용된다.

알려진 ‘아들 비법’ 과학적 근거 없어

피가 멈추지 않는 혈우병, 사지를 못 움직이는 ‘두센 근육무력증’은 아들에게만 나타나는 치명적 유전병이다. 부모가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돌연변이는 X염색체에만 있다. 이 변이염색체를 X′라 하자. 정상 X가 하나 더 있는 딸(XX′)은 괜찮지만 아들(X′Y)은 유전병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런 유전자가 있는 부모는 딸을 ‘골라’ 낳아야 한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정자분리기술과 인공수정-배아검사 방법이다. 전자는 딸 확률을 높이고 후자는 확실히 딸을 고를 수 있다. 모두 의학적으로 필요할 때만 허용된다.

정자분리기술로 정액 속 X,Y정자를 분리한다. 딸을 원하면 남편 X정자만을 아내 난자(X)와 수정시키면 된다. 현재 가능한 기술이다.

다른 방법은 인공수정 선별이다. 배양접시에서 난자·정자를 섞어 인공수정시킨다. 수정란세포가 불어나는 배아단계에서 세포 하나를 떼어내서 DNA 검사를 한다. 유전병 여부와 성별을 알 수 있다. 딸 배아(XX)를 골라 자궁에 착상시키면 딸을 낳는다. 이 선별방법은 일반인에게는 불법이다. 만약 불법으로라도 고르려 한다면 더 알아야 할 게 있다. 인공수정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난자 과배란 유도 주사, 마취상태 난자 채취, 실험실 인공수정, 배아 DNA검사, 난자주입 등 고통스럽고 위험할 수 있는 시술을 받아야 한다.

딸을 많이 원했던 지인은 산성식품인 밀가루음식과 고기만 먹었지만 아들을 임신했고 적잖이 실망했었다 한다. 이후 아이가 아프면 그때 음식편식과 실망감이 태아에게 악영향을 주었던 건 아닌가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실제로 태아 스트레스는 여러 갈래로 온다. 임신 전 엄마 영양상태가 태아 유전자를 변화시켜 평생건강을 좌우한다는 영국의학협회 경고에 귀 기울이자. 아들·딸 골라 낳으려는 검증되지 않은 방법들(특정음식 배제, 과다섭취, 약물사용)은 태아에게 위험천만이다. 잘 먹고 건강하게 낳자. 아들·딸 결정은 삼신할머니에게 맡기자.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자식들은, 딸이건 아들이건, 부모에게 모두 금메달이다.

정자 분리기술

아들딸 구별해서 낳을 수 있나

아들딸 구별해서 낳을 수 있나

X염색체가 Y염색체보다 크다. 따라서 X정자가 Y정자보다 전체 DNA가 2.8% 많고 X정자 머리가 크다. X,Y 정자를 미세튜브로 통과시키면서 현미경하에서 DNA 크기로 자동 분리한다. 분리된 정자로 난자를 수정시키면 82% 아들, 93% 딸을 낳는다. 완벽 분리 되지는 않아서 100% 확률은 아니다.

김은기 인하대 교수

김은기 인하대 교수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서울대 졸업. 미국 조지아공대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창의재단 바이오 문화사업단장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를 통해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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