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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냐, 안태근이냐..양승태 운명 가를 법원 판단은

중앙일보

입력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심사를 마치고 검찰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심사를 마치고 검찰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법원이 직권남용 혐의를 두고 전혀 다른 판결을 내려 논란이 되고 있다.

법원, 직권남용 범위 놓고 다른 판결 #우병우는 좁게, 안태근은 넓게 해석 #직권남용 혐의 양승태 재판에도 영향 #'대법원장 직무범위'가 최대 쟁점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는 직권남용의 범위를 매우 좁게 적용한 반면 안태근 전 검찰국장(검사장)에겐 범위를 넓게 해석했다.

지난달 우 전 수석에겐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가 내려졌지만 안 전 국장에겐 검찰이 구형한 징역 2년형이 그대로 선고됐다.

법조계에서는 두 판결 중 어떤 것이 항소심에서 살아남느냐가 향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의 최대 쟁점 역시 대법원장의 직무범위와 이에 따른 직권남용 혐의 여부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의 변호사는 "같은 범죄 혐의를 두고 1심에서 이렇게 다른 해석을 내린 판결이 나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23일 법원(이상주 부장판사)은 안 전 검사장이 서지현(46·연수원 33기) 성남지청 부부장 검사를 성추행한 뒤 인사 보복을 해 검찰국장 권한을 남용했다며 2년형을 선고했다.

'서지현 검사 인사 불이익'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태근 전 검사장이 23일 오후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 선고공판을 마친 안태근 전 검사장이 호송차로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서지현 검사 인사 불이익'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태근 전 검사장이 23일 오후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 선고공판을 마친 안태근 전 검사장이 호송차로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법원은 안 전 검사장의 지시를 수행한 신모 인사담당 검사에게도 검찰 인사에 관한 고유의 권한(직무)이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인사위원회 기준과 규정의 준수 의무가 검찰국장은 물론 인사담당 검사에게도 있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법원은 안 전 검사장의 지시에 따라 신 검사가 서 검사를 통영지청으로 전보시킨 행위가 인사위원회 규정 준수 의무를 위반한 '의무에 없는 일'이라 판단하고 안 전 검사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했다.

직권남용은 특정인에게 직무 범위를 벗어난 '의무에 없는 일'을 지시하고 그 행위가 지시에 따라 이뤄졌을 때 적용된다.

안 검사장 측은 "신 검사는 인사 업무에 관한 직무집행을 보조할 뿐 고유한 인사 권한(의무)이 없으니 직권남용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지현 검사가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인사보복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된 안태근 전 검사장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지현 검사가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인사보복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된 안태근 전 검사장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판결이 항소심에서도 유지될 경우 재판을 앞둔 양 전 대법원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법원이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수행한 법원행정처 판사들의 직무 권한을 넓게 해석할수록 이들이 단순히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 전달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재판개입 등 '의무에 없는 일'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주필 변호사(법무법인 메리트)는 "인사권은 장관 등 고위직 공무원이 행사하고 하급 공무원은 그 지시를 따르는 보조행위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이번 판결에 따른다면 인사권을 가진 검사와 공무원의 범위가 너무 넓어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인사라는 것이 원래 예측할 수 없고 상황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라며 "어떤 인사가 규정에 위반되는지를 지금 판결처럼 가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주요 혐의 그래픽 이미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주요 혐의 그래픽 이미지.

반면, 지난달 7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민간인 사찰 등 블랙리스트 관련 재판에서 법원(김연학 부장판사)은 안 전 검사장 관련 판결과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직무 권한을 최대한 좁게 해석했고 하급 공무원의 지시 수행은 '직무 집행의 보조행위'라 판단했다. 직권남용에서 의무에 없는 일로 규정되는 의무는 '심리적 의무'가 아닌 '법리적 의무'로 해석했다.

이에 따라 우 전 수석이 국가정보원에 ‘문제 과학 단체 현황을 파악하라’고 지시하거나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장을 사찰하라'고 한 지시는 모두 직권남용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무죄로 판명났다.

한편, 안 전 검사장의 판결은 법원이 서 검사에 대한 인사보복 행위의 직접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수 정황 증거로 인사보복 행위 성립을 판단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가운데)이 구속된 지 1년여 만에 석방됐다. 우 전 수석이 지난 3일 0시를 넘겨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승용차에 타고 있다. 변선구 기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가운데)이 구속된 지 1년여 만에 석방됐다. 우 전 수석이 지난 3일 0시를 넘겨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승용차에 타고 있다. 변선구 기자

하지만 우 전 수석 판결의 경우 법원은 검찰에게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범죄 혐의 증명을 요구하며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최주필 변호사는 "법원이 서 검사가 성추행을 당한 사실과 인사 전보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을 제시하고 있지만 직접 증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항소심에서 사실 관계에 대한 다른 결론이 도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서 검사의 변호를 맡은 서기호 변호사는 "안태근 전 검사장의 징역형은 법리 해석의 문제가 아닌 사실 관계에 대해 법원이 올바른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항소심에서도 같은 결론이 유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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