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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높은 「5공 핵심 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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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국현안의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가던 여야 14인 중진회의가 5공 핵심 인사처리문제에 부닥쳐 교착상태에 빠졌다.
공안 합수부 해체 등 굵직한 작품들을 이미 만들어 냈고 19일 5공 청산에서도 전두환 전대통령의 국회1회 공개증언에까지 합의했으나「5공 핵심인사 처리」의 벽을 넘지는 못하고 여야간 현격한 이견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14인 회의는 19일에 이어 20일 이 문제를 다시 테이블에 올려 씨름하지만 워낙 예민한 사안이라 전혀 진전을 보지 못했다.
5공 핵심인사문제는 결국 정호용 의원처리 문제다. 5공 6인이니 하면서 이원조 의원·이 희성 당시 계엄사령관등의 이름이 들먹여지지만 광주 쪽이나 재야 쪽에서 당시 과잉진압의 책임 있는 공수특전단의 사령관이었던 정 의원의 거취와 사법처리가 관건이 되고있다.
더욱이 정 의원이 군부쪽의 입장을 대변, 광범한 지지를 받고 있는 데다 민정당 내에서도 실세를 떨치고 있어 정 의원 문제는 광주문제에 있어 군의 입장, 민정당의 처지와 얽혀 더욱 처리가 복잡하게 되어있다.
여야 중진회의도 결국 정의 원문제 처리에 대한 방법과 시각의 차이로 갈라져 있는 셈이다.
광주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책임을 지고있는 평민당은 19일 회의에서부터 정 의원 문제를 집중 겨냥해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김대중 총재도 이날 마포 을 지구당 개편대회에서『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과 이 계엄사령관등은 국회에서 고발한 위증죄에 의해 사법처리 되어야 하며 공직에서 물러나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이름을 들어 처리방향을 지적했다.
평민당은 5·18 9주기행사가 진행 중이어서 지지기반인 광주를 비롯한 호남지방과 재야운동권세력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여소 야대 정국주도를 위해서도 정씨 문제를 쉽게 양보할 수 없는 처지다.
평민당은 잠깐 흘러나왔던 정씨의 장기외유에 대해서도『그 정도로는 안될 일』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핵심인사의 공직사회 없이 전직 대통령의 증언이나 광주 보상법 제정 등 만으론 어림없을 것이라고 선 핵심인사 처리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엄포이며 전씨 증언 청취마저 거부하면서 사태를 어렵게 끌고 가 기 보다는 압력용 카드인 듯하다.
그러나 같은 야권의 민주·공화당 입장은 신축성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19일 회의에서도 양당은 정 의원을 비롯, 이희성·소준열·이원조·안무혁·장세동씨 등 이른바 6인 핵심인사의 해석을 놓고 평민당과 거리를 두었다.
평민당이 3김 회담의 합의 사항임을 들어 6인 지명의 유효성을 주장한 반면 민주당과 공화당은『그때의 6인은 일종의 예시였지 특정인사를 못박은 것은 아니다』는 융통성을 보였다.
민주·공화 양당은『누군가 광주문제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특정인을 거명 하지는 않겠다』는 것. 이런 이유로 19일 회의에서 평민당만 정 의원 등 이름을 거론했을 뿐 두 당은 특정인사라는 모호한 표현만 썼다.
특히 공화당은 정씨 문제는 슬쩍 덮어두고 모른척하려는 계산인 듯 한데 김문원 대변인은 19일『광주문제의 경우 총 책임은 지휘 계통상 당시 계엄사령관(이희성)이 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민정당쪽 사정을 많이 반영한 듯 하다. 민정당 측 생각은 당시 사실상 책임은 초기진압에 실패한 정 웅 의원(당시 31 사단장)과 계엄지휘선의 윤흥정·이희성씨 등이므로 이들의 책임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민정당 에서는 한때 정 웅 의원이 먼저 책임지고 의원직을 물러서면 정호용 의원도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서게 할 수 있다는 동시 사퇴론을 제안한바 있는데 야당 측에서 이를 받아 동시 사퇴, 또는 공동사과 방안을 내놓고있다. 물론 이것은 평민당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계산한 방법이기도 하다.
민주당도 핵심인사의 공직사퇴라는 주장에 보조를 맞추고는 있으나 내심 대충 위증고발 정도로 끝내면 되지 않겠느냐는 속셈인 것 같다.
한 관계자는『여권내부사정상 정씨의 의원직 사퇴가 가능하겠느냐』며『정씨가 검찰에 불려가 조사 받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꺼내놓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전씨 증언을 들은 뒤 정 의원을 국회특위가 고발하고 정 의원은 현재 갖고 있는 당직(중집위원, 대구·경북도지부장) 에서 물러서는 정도로 타협하는 방안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민정당 측은 정 의원 문제만큼은 완강하다. 당내에서는 대야협상과정에서 한때 공직 사퇴·장기 외유 등 여러 가지 방안이 떠돌아다닌 것도 사실이지만 지난달 노태우 대통경과 정 의원의 면담이 있은 뒤부터 정 의원 문제는「성역」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종찬 총장·김윤환 총무는『특정인을 지목해 공직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며 『문제가 있다면 야 3당이 고발하면 되는 것』이라고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민정당은 우선 충분한 보상과 정부의 공식 사과 등 광주 해결방안으로 평민당의 마음을 돌리려 애쓰고 있다.
당내 일각에서는 핵심인사 처리가 타결되지 않으면 이 문제는 일단 현안으로 남겨두고 다음 순서인 법률개폐와 농가부채 등으로 넘어가자는 방안도 나오고 있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이 문제를 매듭짓지 않고 우회할 수 없다는 강경론도 있다.
더욱이 타결이 안되면 개별 영수회담으로 넘기자는 일부 주장에 대해 중진회의가 중도에서 중단되는 한이 있더라도 중진회의에서 결말을 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평민당이 강하게 나오면 민정당도 강하게 맞설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 배경에는 단순히 광주문제의 책임뿐 아니라 민정당의 지지기반이 흔들린다는 문제가 겹쳐있기 때문에 민정당도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5공 핵심인사 처리문제의 해결전망은 지극히 불투명하다.
다만 평민당 에서도 전씨 증언을 듣고 정 의원의 고발→사법처리 후 공직사퇴라는 순서를 시사하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책임을 정부와 민정당에 미뤄 놓은 채「미진한 결말」로 끝내는 방법도 고려하는 눈치다.
4당이 5공이나 광주문제를 계속 끌어 대결로 가기보다는 정치권 내의 협조체제가 필요하다고 인정한다면 신축성 있는 해결방법이 나올 여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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