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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라인 패싱, 36시간 조서 열람…양승태라 가능했던 신풍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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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검찰과 출입 기자단이 세운 포토라인 패싱, 36시간에 가까운 조서 열람….

검찰 소환 과정서 오랜 관행 깨 #“피의자의 기본 권리 환기” 주장 #“전직 대법원장 특권 누려” 맞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과거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모습들이 나타났다. 사라져야 하는 오랜 관행에 대한 환기와 피의자의 권리가 부각됐다는 지적도 있지만 한편에선 법적 지식으로 무장한 전직 대법원장이라 가능했던 특권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검찰 포토라인은 1993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검찰 출석 중 몰려든 취재진에 부상을 입은 뒤 정착했다. 이후 존폐 여부를 두고 논쟁이 지속됐는데 양 전 대법원장이 지난 11일 검찰 포토라인을 무시하고 대법원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검찰에 출석해 논란이 증폭됐다. 전직 대통령까지도 검찰 포토라인에서 입장을 밝혔던 관행이 깨지며 포토라인이 국민의 알 권리보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이 부각됐다. 익명을 요구한 부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법적으로 어떤 혐의가 적용되고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를 아는 양승태라 패싱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양 전 원장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조서를 36시간 가까이 열람한 사실 역시 법조계에서는 화제가 됐다.

양 전 원장은 조서 내용에 대한 수정 요청 사항도 많지 않았다고 한다.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이라 답변이 대부분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 전 원장은 변호인들과 함께 검찰에 수차례 출석해 조서를 외우듯이 열람했다. 대한변협 사법인권팀 위원인 양홍석 변호사는 양 전 원장의 ‘36시간 조서 열람’을 특권이라고 비판했다. 양 변호사는 “다른 일반인도 검찰 조사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 조서를 열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양 전 원장이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보장된 피의자의 권리를 보장해준 것이란 입장이다. 양 전 원장이 조서 열람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법적으로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과정에서 법원이 검찰에 발부한 ‘검색어 지정’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서는 법원 내부에서도 “전례가 없다”는 말이 나왔다. 법원은 영장을 발부할 때 일반적으로 범죄의 관련성을 두고 압수수색의 범위를 제한한다. 하지만 이번 수사에서 법원이 발부한 영장 대부분은 특정 검색어와 관련된 내용만 압수가 가능하게 허용하는 방식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검색어로 압수 영장을 제한하면 수사 과정에서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양홍석 변호사는 “압수수색의 범위를 좁게 두는 것은 큰 방향에서는 찬성한다”면서도 “사법부가 자신의 이해관계와 얽힌 사건에 보다 엄격히  법 적용을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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