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손혜원의 멍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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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정치팀 차장

김승현 정치팀 차장

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해 소나 말의 목 부위에 얹는 막대를 멍에라고 한다. 꺾쇠(∧)보다 조금 완만하게 구부러진 모양이다. 앞으로 나가는 소의 힘이 목에 걸린 멍에에 기어처럼 전달돼 연결된 수레를 끈다. 멍에를 짊어졌다는 것은 죽어 쓰러질 때까지 일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어사전에는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두 번째 풀이가 있다.

멍에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자주 쓰고 있어서다.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한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20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그는 유튜브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제 친구 중에 아버지로부터 박물관을 물려받은 친구가 있는데 정말 멍에다. 일 년에 몇십억씩 들어가는데 팔지도 못하고 관리하자니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지자체에서 조금씩 도와주는 것도 전혀 도움이 안 됐다.” 손 의원은 친구와 동병상련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남편 재단 명의로 사들인 목포 부동산이 그가 힘겹게 유지하는 ‘나전칠기박물관’을 이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다.

손 의원은 2017년 8월에도 비슷한 말을 했다. 방송인 이경규가 진행하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신고재산 중 29억원어치의 나전칠기가 포함된 배경을 설명하면서다.

▶이경규=“나전칠기를 수집하는 이유가 뭡니까.”

▶손혜원=“소명으로 하게 됐다. 내가 나전칠기를 좋아해서 한 게 아니다. 우리나라 나전칠기가 세계적인 문화유산인데 국가가 이 귀한 것을 모른다. 그리고 모든 박물관은 지금 시점 것도 모아 놔야 하는 건데 우리는 36년의 단절 때문인지 19세기 것만 산다. 그래서 내가 유명한 장인들의 것을 다 모아서 사들였다. 그러다 보니까 많아졌는데, 나도 사실 이게 멍에다. 이걸 어떻게 할지. 나라에서 나전칠기박물관이나 공예박물관을 해주면 나는 다 기증할 거다. 아무 조건 없이 다 줄 거다.”

손 의원은 자신의 멍에를 국가와 나누어 지고 싶었던 것 같다. 뜻 있는 개인이 죽을 때까지 끌고 갈 게 아니라 국가가 돕는 게 옳은 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면서 소명의식은 더 강렬해졌고, 아파트 개발의 표적이 된 목포 구도심 재생사업과 결합하며 증폭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도면밀한 그가 놓친 게 있는 듯하다. 국회에 입성한 순간 멍에를 나누는 숭고한 일조차 이권이 될 가능성을 살펴야 하고, 기존의 멍에에 점 하나씩 더 붙은 ‘명예’라는 멍에까지 짊어졌어야 했다는 점 말이다.

김승현 정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