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학의 올바른 인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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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우리나라의 대학가에서는 기이하게도 「정치경제학」의 붐이 일고있는 것같다. 해방직후에 볼수 있었던 마르크스 이론이 대학에 그냥 횡행하고있다. 그리고 그것이 「민중」이라는 이데올로기와 결부되어 일부 운동권학생의 사상적 기초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매스컴에선 종종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문턱에서 좌절하지 말자는 글을 보게된다. 이 「선진국」이란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경제학적으로 얘기하면 선진국(중심부)은 「고품질·고가격·고임금상품」 생산국(지식집약형 산업국)이며 후진국(주변부)은 「저품질·저가격·저임금상품」생산국이다. 즉 전자는 값이 비싸도 품질이 좋아서 사야겠다는 품질경쟁력을 갖는 나라인데 비해, 후자는 값이 싸니까 사자는 가격경쟁력 밖에 갖지 못하는 나라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우리나라는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선진국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1인당 GNP·단순한 흑자만으로써 선진국을 규정하는 허구는 버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이 되고자하는 방법론을 가르쳐주는 정치경제학은 원래 「국민대 국민의 이득손실」을 따지는 국민경제학이다. 이 국민경제학은 당시의 선진 영국을 추적하려는 후진독일에서 발생되어 「리스트」에 의해 체계화되었다고 할수 있다.
「리스트」는 세계사를 국가대 국가의 투쟁사로 보고 대외경쟁력 향상에 관한 이론과 정책을 제시, 「인간대 인간의 관계」를 생산력의 관점에서 보는 사회경제학 체계를 만들어냈다. 즉 사회조직이 분업화·전문화하면 할수록 사회는 발전되고 대외경쟁력은 향상된다는 것이다.
그는 「정신적 생산」과 「물질적 생산」을 2대 분업으로 간주하고 『정신적 생산력의 발전이야말로 물질적 생산력 발전의 기초』라는 이론을 전개했다.
대영제국 전성시의 영국 경제학자 「마셜」도 학문의 전문화로 기술·기계의 전문화를 하지 않으면 국민대 국민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국민경제학·사회경제학의 이론을 전개했다. 일본은 명치유신후 재빨리 독일식 국민경제학을 수용해 주류경제학으로 삼았다.
그러면 요즘 우리 대학가에서 관심이 커진 「인간대 인간의 관계」를 생산관계, 즉 계급대계급의 투쟁으로서만 보는 마르크스 경제학은 어떠한 것인가. 이것은 계급경제학으로서의 정치경제학이라고 할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이 세가지 정치경제학 가운데에서 어떠한 정치경제학이 요구되고 있는가. 이에 대해선 국민경제학 + 사회경제학에 의해서 계급경제학, 특히 마르크스 경제학을 지양해야된다고 대답할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경제학이 자본주의의 발전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공헌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론』이 출판된지 1백년이 넘은 오늘 그것이 아무리 천재의 작품이더라도 수정되고 보완되어야만 한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마르크슨「레닌」이 예언했던 바와는 전혀 딴판으로 이루어져 왔다. 「마르크스」「레닌」은 자본주의의 발전이 생산력면에서 「생산의 집적」을 가져오고 생산관계면에서 「독점자본가대노동자의 대결」을 가져온다고 했는데, 사실은 자본주의의 발전은 생산력면에서 「고도의 전문화」를 가져옴으로써 생산관계면에서 「소유자의 경영자화」가 이뤄진 것이다.
전형적인 예가 얼마전 작고한 일본의 송하행지조씨의 경우다. 산하 5백70개 기업이 단하나 「전기」로 전문화되었으며 송하자신 일개 경영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명한 마르크스경제학자 「스위지」조차 그의 저서 『독점자본』에서 미국에는 거대기업은 있어도 그 기업의 지배권은 완전히 경영자 손에 쥐어져 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전은 품질경쟁력이 강한 국가만이 살아남게 하며, 또 고임금도 확보하게 해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고품질→고가격→고임금」을 마르크스 경제학은 설명해낼수 없는 것이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품질경쟁력에서 이겨야하는 것이 절대적 조건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근본원인은 계급대 계급의 이득손실을 따지는 마르크스 경제학만을 취하고, 국민대 국민의 이득손실과 「학문의 전문화→기술·기계의 전문화」를 취급하는 국민경제학과 사회경제학을 공산주의 국가들이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런 오류가 오늘날 사회주의국가가 자본주의국가를 중심부로 하는 주변부로 전락하게된 요인이다.
지금 새삼스럽게 이런 밀을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필요한 정치경제학은 마르크스 경제학을 지양하는 국민경제학 + 사회경제학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농업상의 갈등도 고도의 전문화→중소기업의 질과 양의 향상증대→중소기업에 의한 겸업농업화에 의해서 해결될수 있다.
고도의 전문화가 가져온 막강한 품질경쟁력에서 얻은 대흑자를 배경으로 해서 국제가격의 5배나 되는 고가격으로 쌀을 정부가 매입해서 「농업의 천국」으로 만든 예가 바로 일본이다.
결국 「마르크스」「레닌」이 예언했던 것과는 달리 자본주의는 바로 우리 눈앞에서 순조롭게 발전되고 있으며, 사회주의는 정체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더이상 그것을 근거로 민중해방을 선전해서는 안될 것이다. 노동자는 고급기술로 무장된 소위 「지식노동자」가 됨으로써만 해방될수 있는 것이지 민중해방운동에 의해서 해방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지식노동자가 등장할때 소유자는 경영자화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일부 학생들이 사회주의가 소련·동구·중국, 그리고 베트남에서 실패로 끝난 것이 확인된 오늘날까지 이론적 기초가 되는 마르크스경제학에 매달리는 것은 완전히 시대착오가 아닐수 없다. 우리나라가 필요로 하는 정치경제학에 대한 바른 인식을 통해 행동의 전환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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