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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문화

서울을 축제의 도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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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몇 년 전 출장차 베네치아를 방문했던 일이 잊히지 않는다. 맙소사! 그곳은 저 홀로 18세기였다. 무거운 짐을 끌고, 비를 맞고, 기차를 놓치는 우여곡절 끝에 밤 12시 베네치아의 한 호텔에 도착했을 때 18세기 귀족처럼 화려하게 차려입고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호텔 로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당시엔 하도 느닷없고 신기해 나는 그들이 먼 곳까지 찾아온 여행객들을 환영하기 위해 호텔 측에서 고용한 연기자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다음날 아침 산마르코 광장에 나가 보니 가면 쓴 연기자들 천지였다. 운도 좋지. 때는 마침 리우의 삼바 축제 못지않을 만큼 그 열기가 대단한 베네치아의 카니발 기간이었던 거다.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 멋진 가면과 환상적인 고전 의상을 공들여 차려입은 베네치아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즐비하고, 그들과 함께 축제를 즐기고자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카니발 기간 중에는 시민들 누구나 이 관객 없는 거대한 연극의 주연배우가 돼 가면을 쓰고 무대의상을 입는 매력에서 도망칠 수 없는데, 한때는 가면을 쓰지 않고 외출하는 게 금지돼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 가면축제는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귀족이나 교황, 혹은 카사노바가 돼 지리멸렬한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는 일상의 탈출구 같은 것인데, 나라에서 장려하는 그 특별한 일탈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모처럼 월드컵이라는 축제를 맞은 젊은이들이 붉은 의상을 차려입고 또다시 거리를 점령했다. 나는 토고전이 있던 날 밤 홍대 앞에서 붉은 티셔츠를 입고 얼굴에 페인팅을 하고 귀여운 붉은 악마 뿔을 머리에 쓴 젊은이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봤다. 몇몇은 평소엔 축구에 관심도 없던 여자애들이 브래지어만 간신히 가린 노출 패션으로 이 축제의 주인인 양 행세하는 게 굉장히 눈꼴 시린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노동이나 국가의 가치보다는(스포츠도 누군가에게는 결국 노동이고 그 밖의 사람들에겐 흥미로운 구경거리일 뿐이다) 먹고 마시고 입는 즐거움으로 사는 사람들 편이다. 오프사이드라는 말을 모르면 어떤가? 중요한 건 축구가 아니라 축제다. 축제란 일상의 일시적인 정지 상태이고, 평소와 달리 요란하게 차려입고 그 분위기를 한껏 즐기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는 거다.

패션은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때때로 진실을 은폐하는 도구가 된다. 옷이나 액세서리에 의해 현실 속의 자기와 다른 사람이 되는 거다. 보다 유복하고, 보다 열정적이고, 보다 자유분방하고, 보다 고귀하고, 더욱 젊고, 보다 인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때로는 다른 성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4년 전에 비해 한층 더 요란해지고 적나라해진 월드컵 패션이 은폐하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것은 2002년 이후 이 도시와 이 도시의 젊은이들에게 뭔가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믿었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진실에 대한 은폐가 아닐까? 나는 그 책임을 젊은이들이 온 마음으로 미래에 대한 열망을 가득 담아 표를 던졌던 대통령에게 묻고 싶지만(그의 당선도 젊은이들에겐 하나의 축제였다), 지금은 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존재 여부조차 확인이 안 돼 그 일은 그만둔다.

대신 새 서울시장에게 바란다. 이 도시만의 멋진 축제를 준비해 줄 것을. 예컨대 일 년에 한 번씩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시작된 전국적인 규모의 거대한 내림굿 축제를 여는 거다. 모두가 우리의 탈을 쓰고 밤이 새도록 미칠 듯이 춤추고 엑스터시에 이르러 신을 만나고 이 나라의 재앙을 물리치는 우리들만의 축제 말이다. 그럼 세계인이 다시 한번 깜짝 놀랄 거다.

김경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