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주장,저런하소연] 체육시간'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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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큰아들이 다녔던 중학교는 아파트 단지 내 학교여서 운동장이 좁았다. 대각선으로 100m가 겨우 될까말까할 정도로 매우 작았는데 가끔 일이 있어 학교를 방문하면 그 좁은 운동장에 2~3개 학급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체육 수업을 받고 있어 작은 옷을 입은 양 갑갑함을 느꼈었다. 운동장이 작아서였을까? 옹기종기 모여 무엇을 하긴 하는데 그야말로 체육답게(?) 어떤 운동을 하는 것은 볼 수가 없었다.

1학기말 시험을 앞두고 학교마다 수행평가가 한창이다. 지난번 중간고사 때는 국민체조 시험을 본다고 열심히 순서와 동작을 외우더니 이제는 밤만 되면 줄넘기를 들고 '쌩쌩이'를 연습하느라 학교 운동장이며, 아파트 단지를 술렁이게 만든다. 아이들은 농구게임보다도 주어진 시간 안에 농구공을 몇 번 이상 바스켓 안으로 집어넣어야 만점을 받는다는 사실에 더 익숙해져 있다. 학년이 올라가면 줄넘기의 강도와 횟수만 달라질 뿐이고, 구기종목도 농구에서 배구, 아니면 배드민턴으로 바뀌었을 뿐 크게 달라진 내용이 없다.

주말이나 일요일,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만 나가봐도 생활체육 시험을 위해 과외 받는 아이들로 바글거린다. 이쪽에선 열심히 농구공을 넣고 있고, 저쪽에선 줄넘기…. 시차를 두고 지나다 보면 '요즘 학교에선 어떤 시험을 보겠구나' 단번에 짐작할 정도다. 이제 동네 아저씨들의 조기축구도 운동장에서 밀려났고, 뛰어놀 공간이 없어 그 넓은 운동장으로 향하던 동네 꼬맹이들의 왁짜지껄한 모습도 없어졌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둘째아들도 큰 아들이 앞서간 대로 국민체조 다음에 농구공을 넣고, 줄넘기를 하게 될 것이고, 넓은 운동장을 갖게 되어 좋아했던 고1 큰아들도 내신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평가준비로 체육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참 학업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아이들이 응어리진 마음과 움츠러든 몸을 활짝 펴고, 그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해 낼 데가 없다. 그들에겐 농구 하나도 직접 뛰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시험의 대상이고, 그 흔한 줄넘기도 횟수를 세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취미라고는 컴퓨터게임이 고작인 10대. 어쩌면 그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은 어른들이 아닐까? 줄넘기를 챙겨 학교로 향하는 아들의 등을 바라보며 체육시간만이라도 아이들이 시험에 구애받지 않고 맘껏 체력을 단련하고 제대로 된 땀을 흘릴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 주길 희망해 보지만 세상물정 모르는 한 엄마의 넋두리로 비춰지진 않을는지….

신유선(42.주부.서울 강남구 대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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