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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야당은 아무나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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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새해 일출이나 대보름 달을 보면서 소망을 되뇌는 경우가 많지만 별똥별을 보고 떨어지기 전에 소원을 세 번 빌면 이뤄진다는 말도 있다. 그런 얘기를 듣고 수 없이 시도했지만 성공한 적은 없다. 세 번이나 반복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아서다. 그런데 갑작스런 짧은 시간이 묘미라고 한다. 순간적으로, 쉬지 않고 뱉어내려면 그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항상 되새기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취재하며 비슷한 장면을 경험했다.

한국당 15곳 오디션, ‘젊은 보수’ 바람 #태풍 못 만들고 나머진 도로 내리꽂기

1년 전 새해 첫 일출을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와 함께 봤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앞두고 요동치던 당 움직임을 취재 중이었다. 별똥별은 아니지만 대화 중 우연하고 갑작스레 해돋이가 시작되자 그는 곧장 말을 끊곤 “연말엔 2위 당으로 저 해를 봤으면…”이라고 소원을 빌었다. 어떻게든 통합신당은 만들어지겠구나 하는 의지 같은 걸 느꼈고, 같은 해를 보면서 그제서야 ‘내 소원은 뭐였지’라고 자문했던 기억이 있다.

중요한 건 간절하다는 게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까진 아니란 사실이다. 반년이 안돼 바른미래당은 폭삭 주저 앉았고 안 전 대표는 독일로 떠났다. 한국 정치에 메시아처럼 등장했던 안철수는 왜 끝내 안철수 현상을 살려내지 못했을까. 대표 상품인 새정치의 알맹이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합당을 보수 대안이 아닌 ‘이질적인 사람들의 구태 정치’로 만들어버렸고, 그런 미숙함에 유권자는 고개를 외면했다.

곧 막을 내리는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가 다르지 않다. 한국당 변화와 보수 혁신을 추진할 구원 투수로 영입됐지만 오도 가도 못하다 안철수 전 대표가 갔던 길을 뒤따르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김병준 체제로 결론 나기까지 한국당은 비대위 구성을 놓고 온갖 사람을 총출동 시켰다. 심지어 외과 의사인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에게도 당 비대위원장직을 정중하게 제안했다. 당 내에선 “수술하라고 했더니 진짜 외과 의사를 데려오겠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정신과 의사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이국종 교수가 훌륭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소 잡는 칼이든 닭 잡는 칼이든 지명도만 있으면 이용해보자는 투인데 그렇다고 국회의원들을 향해 휘두를 칼자루를 쥐어준다는 뜻도 아니다. 그저 조종이 가능한 얼굴 마담을 내세워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뜻이다. 백년하청에서 벗어나려면 지도자감 젊은이를 과감하게 발탁해 최고 지도자로 키워내야 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비전, 낡은 세력의 퇴출과 새로운 세력의 대체야 말로 개혁의 요체다.

그러자면 자리를 비켜주고 보수 가치와 차세대 주자를 키우겠다고 나서는 중진들이 줄을 이어야 한다. 그걸 만들자고 비대위를 꾸렸다. 하지만 거꾸로 가는 한국당이다. 황교안 전 총리 입당을 계기로 고질병인 계파 갈등엔 불이 제대로 붙는 모양새다. 엄청난 사태를 겪고도 아직도 웰빙 정당 체질에, 기대는 거라 곤 여권의 헛발질뿐이다. 그러니 파란이 속출했던 15곳 조직위원장 공개 오디션엔 도무지 힘이 붙질 않는다.

세계 각국에 30~40대 젊은 리더가 속출하고 있다. 기존 정치에 염증과 한계를 느끼는 국민들이 국가 위기 돌파를 위해 젊은 지도자를 선택한 결과다. OECD 36개국 중 15개국 정상이 30~40대다. 그런데도 선거에서 두 번이나 역대급 참패를 당한 한국당에선 ‘젊은 대표론’조차 나오지 않는다.

‘폐족 친노’가 어떻게 부활했는지 배워야 한다. 던지고 버려야 한다. ‘젊은 보수’ 미풍을 태풍으로 만들어야 한다. 오디션은 나머지 64곳, 전 지역구로 벌려야 했다. 하지만 맛보기로 끝이었다. 이래서야 3차 쓰나미가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무관심이 미움보다 더 무섭다.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