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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이 숟가락이면 음악·연기는 젓가락…예술은 그냥 하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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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호 18면

[셀럽 라운지] 뮤지컬 ‘잭 더 리퍼’ 연출 맡은 신성우

뮤지컬 ‘잭 더 리퍼’는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1월 15일부터 3월 31일까지 공연된다. [사진 메이커스프로덕션]

뮤지컬 ‘잭 더 리퍼’는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1월 15일부터 3월 31일까지 공연된다. [사진 메이커스프로덕션]

‘고독한 테리우스’는 어디로 갔을까. 1990년대 가수 시절 "예” "아니오” "싫어요” 딱 세 마디만 했다던 과묵한 로커 신성우(51)는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논리정연한 달변의 연출가로 변신해 있었다. 가수에서 배우로, 때론 조각가로 늘 경계를 넘나들어온 그이기에 연출 도전은 사실 별스런 일은 아니다. 올해 초연 10주년을 맞는 뮤지컬 ‘잭 더 리퍼’에서 꾸준히 주연 ‘잭’으로 활약해온 그가 10주년 기념공연에서 연출까지 도맡게 된 건 순전히 작품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잭 더 리퍼’ 10년 #가수 땐 예·아니요·싫어요 세 마디 #성격 변해 ‘고독한 테리우스’ 옛말 #연출자로 데뷔 #배우·스태프들이 놓친 것도 챙겨 #밥 퍼주다 보니 밥 먹을 시간 없어 #조각가로 활동 #혼자 생각 정리하고 싶을 때 작업 #때가 되면 음악인으로 복귀할 것

“처음엔 고민했죠. 작품을 훼손하면 안되니까요. 워낙 텐션이 센 배우들이 오랜 시간 같이 호흡해온 터라, 다른 연출자가 오면 우리의 10년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배우들과 부딪칠게 뻔하다는 생각에 덥썩 맡게 됐어요. 생각보다 힘들진 않은데 첫 번째 관객이 되야 하는 게 다르긴 해요. 배우나 스태프가 놓치고 가는 사소한 부분까지도 관계성을 생각해야 하는 거죠.”

전에 불같았다면 지금은 난로 된 느낌

자기 연습도 해야 할 텐데요.
"남들 밥 퍼주다 보니 내가 밥 먹을 시간이 없다고나 할까.(웃음) 틈틈이 ‘나도 좀 끼워줘’ 하고 한번씩 해보는 식이죠. 익숙한 역할이지만 배우들간의 약속이 존재하니까 자꾸 맞춰 봐야 해요.”
신성우만의 해석도 볼 수 있나요.
"10년을 해 오면서 배우들이 완성시킨 작품이거든요. 원작을 많이 각색하면서 다소 완성도가 떨어지는 대본을 배우 역량으로 완성시켜 왔는데, 10년을 오다보니 캐릭터의 선명성 자체가 뚝 떨어진 느낌이더군요. 이번 시즌엔 캐릭터 바로 세움 작업을 하기로 했어요. 대본을 걸레가 되도록 봐가면서 서브텍스트를 다시 짰죠. 공연 보셨던 분도 많지만 이번 시즌에는 말끔하게 정리된 느낌을 받으실거예요.”  
10년 전과 지금의 잭에 변화가 있을까요.
"그때는 장면에서 이해가 안되는 상황들이 존재했죠. 배우들이 완성한 작품이라고 했지만, 제가 연출에게 제안해서 추가된 장면들도 있어요. 체코 원작에서는 잭만 있고 다니엘과 앤더슨도 없죠. 관계성을 만들려고 우리가 창조한 캐릭터거든요. 노래도 원작의 곡들은 우리와 안맞는 곡들이 많았어요. 전부 새로 작곡해야 하나 했는데, 체코 작곡자가 자기 곡중에 맞는 건 뭐든 써도 된다며 다 주더군요. 그래서 원작보다 좋은 곡이 많이 추가됐어요. 듣고 있으면 눈물날 정도로 선율이 좋은 곡이 많아요. 체코에서 만난 제작자가 우리 버전으로 공연하고 싶다고 했을 정도죠.”
지금의 신성우도 10년전과 달라졌을텐데.
"40대에서 50대가 됐죠.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갈 땐 ‘나 어떡해, 늙었어’ 이러쟎아요. 오히려 저는 지금이 더 좋아요. 예전에 불같았다면 지금은 난로가 된 느낌이랄까. 그런 식으로 변한 것 같아요.”
데뷔 초엔 ‘고독한 테리우스’였는데요.
"뮤지컬하면서 바뀐거죠. 음악은 혼자 다 책임지면 되요. 근데 이건 나만 잘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못하는 부분은 다른 배우에게 힘을 얻어야 하죠. 캐릭터들이 교류하고 호흡을 나눠서 전체 합쳐진 에너지가 감동이 되는 거쟎아요. 예전엔 세마디 밖에 안했어요. 별로 말하기 싫었어요. 말해봐야 뭐해, 바뀔 것도 없는데. 이런 생각이었죠. 바꿔주기를 원하지 않았는지도 몰라요. 비관적이었던 건데, 뮤지컬을 하다보니 말하면서 서로 이해도 하게 되고 서서히 바뀌는 게 있다는 걸 알게됐죠.”
뮤지컬이 좋네요. 사람 성격도 바꿔놓구.
"운이 좋았죠. 이 바닥에 왔을 때 좋은 안내자를 만났으니까요. 데뷔 때부터 강대진 감독, 박철호 선배 같은 좋은 분들이 끌어주고, 현장에서 많은 걸 습득할 수 있게 도움받았던 것 같아요.”
뮤지컬 ‘잭 더 리퍼’는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1월 15일부터 3월 31일까지 공연된다. [사진 메이커스프로덕션]

뮤지컬 ‘잭 더 리퍼’는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1월 15일부터 3월 31일까지 공연된다. [사진 메이커스프로덕션]

이제 막 돌이 지난 첫 아들도 그의 인생에 큰 변수로 작용했다.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이 아들의 탄생을 계기로 뭉치게 된 것이다. “어머니랑 지낸 시간이 얼마 안되거든요. 많지도 않은 식구라, 온 집안 식구가 모여사는 게 꿈이었어요. 다행히 와이프가 거부감이 없더군요. 할머니 같은 느낌이라고 모시고 살아도 좋다고. 불편함도 있겠지만 슬기롭게 넘어가는 편이에요. 나이 먹다보니 그런 게 있더군요. 새해가 되면 어머니한테 감사해요. 병치레없이 건강하게 계셔주시는 것만해도 어딘가 싶어요.”

가수활동이 너무 뜸한 것 아닌가요.
"예술이란 건 실생활과 100프로 맞물려야 하거든요. 음악인으로서의 생활패턴이 아닌 상황에서 음악을 생산하는 건 거짓말 밖에 안되요. 음악을 생산하려면 음악이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생활을 해야되는데, 사람들과의 약속인 연기를 하면서 내 안으로 들어가는 생활을 할 수 없거든요. 거짓말은 만들기 싫어서 안하고 있지만, 분명히 언젠가는 때가 올거라 생각해요.”
조각가로서는 꾸준히 활동중인데.
"귀소본능처럼 혼자이고 싶고 생각 정리하고 싶을 때 가서 작업을 해요. 제 꿈이 원래 조각가였으니까요. 예전에 미술을 할 때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면 음악 스튜디오로 달려가던 걸 지금은 조각 작업실로 가는 거죠. 아마 이런 시간들이 다시 음악으로 가는 상황이 되면 조각품처럼 음악도 나올거라 믿어요. 조각이 숟가락이면 음악은 젓가락이랄까, 똑같은 예술인데 방법이 다를 뿐이죠. 예술을 어떤 직업군으로 분류하면 예술의 본질을 절대 이해 못해요. 가수가 그림을 그리는 걸 두고 노래나 하지 그림으로 사기친다는 시선도 있지만, 그런 시선은 아마 다음 세대에겐 치명적인 시선이 될 거에요. 배우가 노래하지 말라는 법도, 노래하는 사람이 배우되지 말란 법도 없잖아요. 영감이 떠올라 남에게 감동주고 아름다움 선사할 수 있다면 그게 예술가죠. 예술은 그냥 하나로 보는 게 이해하고 느끼고 행복감을 가져가는 양이 클 겁니다.”
뮤지컬 ‘잭 더 리퍼’는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1월 15일부터 3월 31일까지 공연된다. [사진 메이커스프로덕션]

뮤지컬 ‘잭 더 리퍼’는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1월 15일부터 3월 31일까지 공연된다. [사진 메이커스프로덕션]

조각 작업에서 그의 테마는 ‘시간의 흐름’이다. “중력 따라 흐르는 것은 미래, 반작용으로 무중력상태로 지향하는 건 과거이고 나는 현재상태의 내 사고의 상황을 발췌한다”는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설명이 너무 어렵다고 하니, 지난해 8월 교토에서 열었던 개인전 사진을 보여준다. “내 테마가 흐름이에요. 존재 자체가 흐르는 곳에 있지 않나요. 이건 ‘모반’이란 작품인데, 씨앗의 껍질을 형상화해 태반을 표현한 거예요. 어머니가 40년 전에 구입하셨던 자개장 문짝을 오브제로 이용해 거기에 접합한 작품이죠. 그 당시 우리 가족에게 자개장의 의미가 컸거든요. 이정도면 우리가 먹고살 수 있는 집안이 됐다는 의미였죠. 새집을 지으며 그걸 버려야 되는 상황이 되니 슬퍼하시더군요. 그래서 어머니께 그 시간을 돌려 드리려고, 슬퍼하시는 어머니를 현재의 시간으로 발췌해서 형상화한 것이죠.”

좋은 뮤지컬 창작해서 물려주고 싶어

로커로서의 정체성이 있는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보셨나요.
"남들이 다 보는 건 나중에 봐요. 몰려가서 볼 필요 뭐 있나요. ‘라이브에이드’ 장면은 레이저 디스크도 갖고 있고, 그 당시 어릴 때 생중계 실황으로 봤어요. 이태원에 가면 위성TV로 보여주는 데가 있었거든요. 중3부터 밴드를 하고 있었으니, ‘내가 좋아하는 밴드 다 나왔네’ 하면서 봤죠.”
그걸 보면 콘서트를 하고 싶어질 텐데요.
"하고 싶죠. 특히 여기 올림픽공원 들어오면, 옛날에 공연하던 데니까 더 생각나고 그래요. 10년 이상 못했는데, 음악을 안한 시간 동안 제 음악을 기다려준 분이 있다면 그간의 내 인생을 담은 노래를 새로운 형태로 들려드리고 싶어요. 옛날 노래 갖고 나와서 ‘나 한때 잘나가던 사람이야’ 하고 추억팔이하는 건 딱 질색이에요. 음악인으로 복귀할거면 새로운 음악을 보여드릴꺼고, 가수가 아니라 그런 음악인으로 존재하고 싶어요.”
언젠간 뮤지컬 제작이 꿈이라구요.
"좋은 뮤지컬을 창작해서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잭 더 리퍼’를 10년 동안 한 것처럼, 좋은 힘을 가진 작품을 하나 만들어주면 좋은 선배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도 그걸 위한 과정이라 생각해요. 앞으론 기술발전에 따라 뮤지컬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기존의 구조에 갇혀 똑같이 답습하는 건 무의미한 것 같아요. 구태의연하지 않은, 획기적인 어떤 걸 보여드려야겠죠.”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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