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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걸맞는 정치개혁 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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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경=박병석 특파원】정부에 「최후통첩」을 보낸 2일 오후 「북경대학생자치연합회」(가맹교 45개교) 연합총본부가 설치된 북경사범대학에는 게시판마다 「통고」와 「통지」를 알리는 대자보(벽신문)들이 나붙고 이를 보려는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들 대자보는 이미 몇 겹이나 된 옛 대자보위에 붙어 있고 게시판이 모자라서인지 게시판 주변의 벽에도 『국민은 우리를 지지한다』『29·30일 당국과 기존 학생대표와의 소위 「대화」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등의 제목을 붓글씨로 쓴 대자보들이 어지러이 널려있다.
대자보주변에는 학생들이 빽빽이 둘러싸 열심히 읽고 있으며 적지 않은 학생들이 노트에다 그 내용을 일일이 베끼고 있는 모습이 무척 진지하다.
일부 학생들은 대자보의 내용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모습도 보였다. 홍콩 및 구미기자들 몇 명도 이들의 틈에서 그 내용을 정리하고 있으나 학생들의 주의를 크게 끌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학생들의 틈을 비집고 앞쪽으로 들어가 보니 신문지 한 장만한 대자보의 여백에는 대자보내용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적은 빽빽한 내용들도 눈에 띈다.
대자보 내용 중에는 특히 당 기관지 인민일보, 국영 중앙TV 등을 비판하는 것들이 많고 아직도 『「부야오방」동지를 애도한다』『호의 정치개혁을 지지한다』는 등의 호와 관련된 대자보와 구호들이 적잖게 붙어 있다.
북경사대 게시판의 대자보 앞에 서있던 한 학생에게 「자치회 연락총부」의 위치를 묻자 그는 『어디에서 온 기자냐』고 물은 뒤 「연락총부」가 위치한 학생기숙사 방 앞까지 동행, 안내했다.
「연락총부」인 4백호실에서 만난 「순」이라는 이름의 한 학생대표는 인터뷰에 응하며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며 자신이 「연락총부」간사중의 하나라고만 보도해달라고 부탁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북경대학생자치연합회」의 성격과 조직은.
▲북경시내 대학과 단과대학(학원) 45개교 대표들로 구성돼 있다. 기존 「중화전국학생연합회」와 「북경시학생연합회」가 어용조직인데 비해 우리는 자발적·자주적 조직이다.
당국은 우리를 비합법 조직으로 규정했으나 우리야말로 대표성을 갖는다.
-자치연합회가 오늘 당·정·의회에 제출한 11개항의 요점은 무엇인가.
▲당의 정치국 상무위원, 정부의 부수상급 이상, 전인대(국회)의 상무부위원장(부의장) 이상과 진정한 대화를 갖자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했으며 서로 상의할 수 있음을 명백히 했다. 3일 정오까지 회신을 달라고 명기했다.
-정부는 「자치연합회」자체를 불법조직으로 선언했는데 당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겠는가.
▲지금은 기존 학생회와 우리조직이 양립해 있는 상태지만 우리는 합법적 지위를 쟁취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북경대·청화대의 기존학생간부들이 사퇴한 것을 주목하기 바란다.
쉽지 않겠지만 이는 중국의 민주화과정에서 필연적인 추세라 본다.
-당국이 당신들의 요구를 거절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 후의 대책은.
▲4일 「5·4운동」70주년을 기해 대규모시위를 벌일 것이다. 최종 방침과 행동방향은 3일 정오까지 당국의 태도를 본 다음 오후2시30분 바로 이 대학에서 45개교 대표가 회합, 최종결론을 낼 예정이며 동맹수업거부는 물론 계속된다.
-수업거부와 4일 시위시 예상참가 학생수는.
▲수업거부와 시위예상 참가비율은 모두 80% 정도로 본다.
-4일 시위집결장소는 역시 천안문인가. 4일 오전10시에는 인민대회당에서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가 열리는데.
▲집결지점은 내일 회의에서 결정될 것이나 천안문은 피해야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이날 천안문에서는 중·고생들이 「5·4운동」기념식을 갖고 또 인근 인민대회당에서는 ADB총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최종목표는 국가이익이다. 중·고생들을 끌어들일 시기는 아니며 외국대표들에게 우리의 문제를 노출시켜 국가위신에 영향을 주고싶지는 않다.
-시위 효과를 위해서는 오히려 좋은 기회라는 의견은 없는가.
▲지금으로서는 중·고생이나 근로자들과 연합할 생각은 없다. 우리는 개혁·개방, 특히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당신들의 구체적 요구사항은.
▲호요방동지가 주장했던 경제개혁에 걸 맞는 정치개혁이다.
민주와 자유, 그리고 특권관료의 부정부패 척결, 신문의 자유 등이다. 내 개인으로서는 당장 시급한 것은 보도의 자유다.
인민일보 등 관영신문들은 우리의 애국운동을 「동란」으로 규정하고 우리의 뜻을 왜곡시키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주장은 거의 취급하지 않고 정부의 경고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지는 않겠는가. 87년 1월 호요방의 실각도 같은 맥락이었는데.
▲우리도 이점을 걱정하고 있다. 개혁을 촉진시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오히려 반대파에게 악용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그는 외국언론이 보는 급진개혁파와 온건파의 인맥을 되물었다)
-당신은 학생지도자중의 한사람인데 결과가 두렵지 않은가.
▲(한참 생각한 뒤) 걱정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요구는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는 애국운동이라는 것을 당국이 이해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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