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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포럼

집에 가고 싶은 한국전 유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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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주 서울역에서 열렸던 한국전 전사자 유품 전시회를 둘러봤다. 녹슬고 흉한 모습의 철모, 탄창, 대검은 당시의 처절했던 전투 장면을 연상케 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소재가 됐던 만년필, 재일(在日) 학도병이 소지했던 일본 동전, 미군 군복 단추, 북한군 버클도 전쟁의 비극을 말 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육군이 지난해까지 찾아낸 한국전 국군 전사자 유해는 1090구. 전체 대상자 13만여 명에 비하면 미미하기 짝이 없다. 집에 가길 고대하며 아직도 이름 모를 산과 들에 누워 있는 호국영령의 수가 부지기수인 것이다. 게다가 신원이 확인된 유해 51구 중 유가족을 찾은 것은 20구에 불과하다. 땅속에서 잠자다 반세기 만에 가까스로 지상으로 올라왔지만, 영원한 안식처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처지가 정말 안타깝다.

유해 발굴 사업이 이런 '초라한 성적표'를 받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역대 정권을 포함해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한국전 발발 50주년 기념행사로 2000년에야 시작됐다. 그것도 3년간 한시적으로 말이다. 그러다 이 기간 내 발굴 실적이 예상보다 부진하자 영구사업으로 전환되기는 했다. 그러나 그 이후도 '황소걸음'은 마찬가지였다. 1년 뒤 불과 20여 명의 장병들로 구성된 육군본부 유해발굴 전문단이 출범했고, 내년에야 이를 국방부 차원으로 확대한다고 한다. 그것도 어느 정도 규모와 열의를 갖고 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국처럼 철두철미하게 추진한 게 아니고, '하는 둥 마는 둥' 하다 세월만 지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를 위해 전쟁에 참가했다가 전사하거나 실종된 국민에게 이렇게 무심하면 '반듯하고 당당한 국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특히 현충일 특집 방송 때 소개됐던 이들과 그 가족들의 기막힌 사연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신혼 초 학도병으로 입대한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도 엉엉 소리내 울면 '시집 식구들에게 무슨 소리 들을까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이 붓도록 울었다고 한 미망인은 회고했다. 그녀는 "남편 뼛조각이라도 하나 찾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이 남은 소원"이라고 말했다. 한 전사자는 생전에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오랑캐 무찔러 방방곡곡에 평화의 종소리가 오면 고향에 갈 테니 갓난 아들을 잘 키워 달라"고 당부했다. 다른 미망인은 전사한 남편을 그리워하며 10여 년간 썼던 편지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한국전이 발발한 지 56년이 지났다. 긴 세월이 흐른 만큼 세상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국가를 위해 생명을 던진 군인들에 대한 국가의 책무마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남긴 유해는 단순한 뼛조각이 아니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받쳐주고 있는 초석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유해 발굴에 전력을 쏟아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유해 발굴 사업이 성공하려면 전사 장소나 매장 위치를 제보해 줄 참전자와 해당 주민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이들이 더 늙기 전에 이들과의 연락체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발굴 사업의 법적 근거를 만들어 유관기관과의 원활한 협조 체제를 마련하는 것도 시급하다. 이런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이 사업을 진행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는 참담한 상황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 물론 손쉬운 사업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과거사 파헤치기나 대북 지원에 기울이는 정성의 극히 일부만 돌린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

안희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