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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효도 살 순 없었다" 자녀 법정 세우는 부모 급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올초 90대 조부의 불효투가 터진 후 출연예정 드라마에서 자진 하차한 배우 신동욱. [뉴스1]

올초 90대 조부의 불효투가 터진 후 출연예정 드라마에서 자진 하차한 배우 신동욱. [뉴스1]

사회문제로 주목받는 '불효투'

배우 신동욱(36)씨는 최근 출연하기로 한 드라마의 자진 하차를 결정했다. 지난 2일 96세 조부 신씨의 ‘불효투’(#불효 Too·나도 불효 당했다)가 터진 이후다. 신씨는 한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효도를 전제로 경기도 여주 집과 땅을 물려줬지만, 동욱씨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다고 주장했다. 현재 둘 사이에는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소송이 진행 중이다. “재산을 되찾겠다”며 신씨가 제기했다.

이에 대해 동욱씨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신율의 송평수 변호사는 즉시 공식입장을 내고 “과거 신동욱씨의 조부는 아내와 아들, 손자 3대에 걸쳐 가정폭력, 폭언, 살인 협박은 물론 끊임없는 소송을 진행하며 가족 구성원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다”고 반박했다. 소유권 이전은 적법한 절차를 밟았다고 했다.

배우 신동욱 측에서 소송을 진행 중인 법무법인 신율 사무실. 김민욱 기자

배우 신동욱 측에서 소송을 진행 중인 법무법인 신율 사무실. 김민욱 기자

80대 조부, "손자 잘못 키운 내 탓"

인천에서도 불효투가 나왔다. 88세 조부가 30대의 손자를 처벌해달라며 지난달 인천 삼산경찰서에 고소장을 낸 것이다. 혐의는 횡령과 사문서위조 등이다. 조부 A씨는 9억5000만원의 건물공사비 중 4억여원을 손자 B씨(37)가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또 본인 소유의 6층짜리 인천 부평구 부평동 건물을 자기 모르게 공동명의로 변경했다고도 했다.

A씨는 어려서부터 의붓어머니에서 자란 B씨가 안쓰러워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둘 사이는 지난해 6월쯤 A씨의 요양등급(4급) 판정 이후 틀어지기 시작했다. 병간호를 요양보호사에 맡긴 채 소홀했기 때문이다. A씨는 경찰 조사를 앞두고 “돈이 천륜을 저버렸다. 손자를 잘못 키운 내 탓”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고 말했다.

고령사회 속 부양료 심판 늘어

고령 인구비율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불효투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에 따르면 부모 자식 간의 부양료 심판 청구 건수는 2006년 152건에서 2011년 238건, 2016년 270건으로 대체로 증가세다. 노부모가 재산을 물려줬는데도 부양의무를 게을리한다며 자녀를 법정에 세우는 일이 늘어난 것이다.

노부모에 대한 존중이나 보살핌 등의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던 전통적 사상인 효(孝)가 엷어지는 현상과도 무관치 않다. 보건복지부의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2016)에 따르면 전국의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1만1905건으로 나타났다. 2014년에 비해 12.6% 증가한 수치다. 노인학대 발생 장소는 가정이 85.8%로 압도적이었다. 학대 가해자는 아들 36.1%, 딸 10.7%였다. 자녀가 절반에 가깝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자녀·손자의 돌봄이 상속의 당연한 조건으로 따라왔지만 개인주의가 발달한 요즘은 부모 자식 간 관계가 예전과 다르다”며 “재산을 물려주고 생각처럼 효도를 받지 못하니 이용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조부모와 손주, 부모와 자녀 간 이런 소송이 계속 늘어날 수 있는 이유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발표한 2018 서울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의 노령 인구 비율은 13.48%로 고령사회 진입 초읽기에 들어갔다. 노령인구 비율이 14%면 고령사회로 분류된다. [픽사베이]

서울시가 발표한 2018 서울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의 노령 인구 비율은 13.48%로 고령사회 진입 초읽기에 들어갔다. 노령인구 비율이 14%면 고령사회로 분류된다. [픽사베이]

국회 계류 중인 '불효자 방지법'

이에 효도계약서(조건부 증여계약서)가 주목받고 있다. 효도계약서는 노부모가 성인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 집 방문 횟수나 입원·병간호비 지급 등을 명시하는 계약서다. 효도가 조건이다. 요즘 변호사 사무실로의 문의가 늘었다고 한다. 법무법인 우일의 방효석 상속전문변호사는 “3~4년 전 소수의 VIP만 효도계약서에 관한 정보를 알았지만 점점 대중화하고 있다”며 “요즘 꾸준히 상담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효도계약을 놓고 부모-자식 간 다툼이 일자 아예 법을 개정해 불효를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6년 9월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자녀가 부모에게 재산을 물려받고도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부모를 학대했을 경우 증여 재산을 반환토록 하는 게 법안의 골자다. 일명 ‘불효자 먹튀 방지법’이다. 효심을 법으로 통제한다는 비판 등에 실제 개정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다른 불효자 방지법이 지난해 2월 발의됐다.

이 법을 발의한 민주당 박완주 의원은 “현행 민법에서는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이미 증여한 재산을 돌려받을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민법)이나 스위스(채무법), 프랑스(민법) 등에서는 증여한 재산에 대해서 자식이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반환 청구를 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여주·인천= 김민욱·최은경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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