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염불만 외는 보안법 개정-김진 <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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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가 너무 손을 놓고 있다.
문 목사 입북이 불러온「공안쇼크」로 사회전체가 긴장과 갈등 속에 빠져 있는데도 정치권에선 여야가 마주앉아 걱정하는 모습하나 보이지 않는다.
합수부의 등장, 이영희 교수 구속과 한겨레신문 수사로 인한 언론 탄압시비, 고대와 서울교대의 휴업 등 학원사태, 5월 파업설 시비로 세상이 온통 시끄러운데 여야는 임시국회를 열기는 하되 5월 중순께 느지막히 열기로 미뤄놓고 동해시 후유증 치다꺼리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정치의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정치권의 무성의와 게으름이 단적으로 표출된 것이 국가보안법과 안기부 법이다.
야당 측이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한 국가보안법이 작금에 그대로 적용되고 그 정당성에 대한 시비가 분분한데도 이 법의 정비를 책임지고 있는 국회법률 개폐 특위는 낮잠만 자고 있고 야당 측도 서두를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악용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 일찌감치 개정안을 내놓은 민정당 안에서『고쳐선 안 된다』는 강성기류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8일 중집위에서 법률 개폐특위 위원장인 오유방 의원이『문씨 입북같은 단발적 사건이 터졌다 해서 우리 입장을 바꿔서는 안 된다』고 역설해 겨우 진정이 되어 있는 정도다.
「악법개정」을 부르짖었던 야당의 책임은 더 크다.
평민·민주당은 보안법의 폐지를 부르짖으면서도 특위 구성 후 10개월이 지나도록 일관된 대안을 제시 못하다가 지난 3월 임시국회가 끝나갈 무렵 서둘러「보안법 폐지→형법 흡수」라는 주장을 내놓았으나 내용미비로 야3당 합의조차 실패했었다.
「악법」이라고 주장만 했지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위는 지난해부터 공청회를 열어 차제에 보안법찬반 대 공방이나 나아가 보혁 이념 논전을 한바탕 벌이겠다고 해놓고서도 여전히 공염불로 그치고 있다.
문 목사 사건으로 보안법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있는 와중에도 여야는 도무지 진지한 구석이란 없으니 그 불감증을 어떻게 해석해야될지 모르겠다.
여소 야대가 몰고 온 개혁의 바람이 가시적 성과로 나타나는 부분은 바로 법률의 민주적 정비일 것이다.
여야가 동해시 재선거처럼 떠들썩한 정치에만 매달려 헛 구호로 목청을 돋우기보다 구체적인 성과를 찾아내는 작업에 보다 관심을 보였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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