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北, 워싱턴과 직거래 시도…美의회에 "만나자" 접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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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북·미 대화가 교착된 국면에서도 물밑에선 미국 의회를 상대로 접촉을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 주재 북 유엔대표부가 나서 #상원 외교위 전문위원, 싱크탱크 #대북정책 관련 인물 전방위 접촉 #“미, 제재 완화해줄지 의중 탐색”

워싱턴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27일 “북한이 e메일 등의 방법으로 대북 문제를 다루는 미국 각계의 주요 인사들에게 만나자는 접촉 의사를 알리고 있다”며 “여기엔 미국 의회 관계자도 포함된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대미 물밑 접촉을 시도하는 북한의 현지 채널은 뉴욕의 북한 유엔대표부다. 소식통은 “북한 측이 접촉을 시도한 미국 측 인사 중엔 상원 외교위의 핵심 전문위원도 포함돼 있다”며 “상원 외교위 인사까지 파악해 북한이 접근을 시도한 것은 북한이 워싱턴의 대외정책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상원 외교위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치면서 때로는 방향을 조정할 권한을 갖고 있어 미국 외교의 키를 쥐고 있는 또 다른 채널이다.

북한이 접촉을 시도한 상원 외교위의 해당 인사는 소식통에게 “북한의 e메일을 받기는 했지만 답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 인사는 미국 행정부의 전직 관료 출신으로, 한·미 및 남북 관계에도 정통하다. 서울 외교가에선 미국 의회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파악하는 데 가장 정통한 인사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식통은 “북한은 이런 식의 만나자는 e메일을 상원 외교위만이 아니라 의회의 다른 인사, 싱크탱크 전문가 등에게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북한이 물밑에선 의회와 K스트리트(싱크탱크·로비스트 등이 밀집한 워싱턴 지역)까지 들어가려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협상은 교착 국면이다. 11월 초로 잡혔던 북·미 고위급회담은 무산됐고,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상 부상과의 실무협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은 행정부를 상대로는 무응답으로 일관하면서 외곽 매체를 통해 “미국이 현상유지를 선호한다면 구태여 대화할 필요가 없다”(조선신보 12월 10일)며 문을 닫은 듯한 모양새를 취해 왔다. 워싱턴의 미국 당국자들이 “북한과의 협상 상황을 설명하는 단어로는 교착(stall)이 아닌 (북한의 일방적) 중단(hold)이 맞다”고 표현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면에선 미국 의회 등을 상대로 접촉을 시도하는 것은 두 가지 의도로 풀이된다. 소식통은 “워싱턴 현지에선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제재 완화 가능성과 관련한 기류를 파악하기 위해 만나자고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대화를 재개할 경우 파격적인 제재 완화를 해줄지 여부를 탐지하는 차원에서 정보 수집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위원도 “경제 발전을 위해선 제재 완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북한은 미국의 의중을 읽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워싱턴 내 여론 조성까지 노린다는 것이다.

다른 쪽에선 의회와 싱크탱크 등에 대한 접촉 시도 자체가 트럼프 행정부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관측도 있다. 소식통은 “북한도 협상의 동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기에 다양한 물밑 접촉을 할 수밖에 없다”며 “북한 외교관들이 물밑에선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자체가 미 행정부에 우리가 협상을 완전히 포기한 게 아님을 보여주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수진·이유정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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