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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탈법 쟁의에 강경 대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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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안 합동 수사본부가 18일부터 사용주 감금·폭행, 관리직 축출 등 일부 사업장 근로자들의 불법적 장기 농성행위와 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온 재야 노동단체에 대해 공권력을 투입하고 일제수사에 나선 것은 봄철 임금교섭을 앞둔 노사분규가 예년과는 달리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데 대한 긴급처방으로 풀이된다.
정부 당국은 그동안「5월 총 파업설」등으로 올 봄 노사분규의 파고가 매우 높아져 산업평화와 사회안정에 큰 저해 요소로 등장할 것으로 판단, 강경대응 방침을 거듭 밝혀오다 구체적인「실력행사」에 들어간 셈이다.
합수부의 이러한 강경 조치에 대해 전민련 등 재야단체와 전국 임금인상 투쟁본부 등 노동단체는 민주세력 탄압공세의 일환인 노동탄압으로 규정, 크게 반발하며 시위 등으로 대처할 방침임을 밝혀 올 노사분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엄한 법 적용 선회>
공안 합동 수사본부의 18일 부천지역 4개 장기분규 업체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그동안 부분적으로만 문제삼아 오던 근로자들의 일부 불법행위를 공식적·전면적으로 문제삼았다는 데서 정부의 방침을 엿볼 수 있다.
정부 당국은 그동안 우리의 노사관계 교섭 관행이 아직은「학습」단계에 있음을 감안, 노사 양측이 교섭 과정에서 행한 어느 정도의 위법은 크게 문제삼지 않아 왔었다.
정부는 그러나 위기의식을 느껴온 이번 봄 분규를 앞두고 이제는 노사문제에서도 엄격한 법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이같은 극약처방 없이는 이번 봄의 시국이 안고 있는 고비를 넘기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공권력의 강력한 행사를 통한 사태해결을 시작한 것이다.
공안 합동 수사본부가 앞으로 다른 공단지역에 대해서도 공권력을 투입, 강제 해산시키기로 한 대상은 △사업주 감금 등·인격 모독 △관리직 축출 및 공장점거 △신나 등 발화물질이나 각목·쇠파이프 등 위험물건 소지 △회사기물 파손 △외부세력의 농성 합세 등이다.
당국은 이같은 분규 현장에는 앞으로도 사업장의 평화 확보를 위해 관련자 구속 수사로 엄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합수부는 부천 세논 기계 공업의 경우 노조원 23명이 회사 사장 집에 찾아가 문을 발로 차는 등 소란을 피웠고 20여명이 회사 사무실에서 전화기 5대 등을 탈취했으며, 관리부장 등 직원 2명이 제3자에 의해 12시간동안 감금, 폭행 당했다고 밝혔다.
합수부는 이와 함께 각 지역의「노동 삼담소」등 재야 노동단체가 근로자들을「의식화」시켜 노사분규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보고 경기지역의 상담소를 중심으로 집중적인 수사에 나서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18일 발표된 장영철 노동부 장관의 담화문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장 장관은 담화문에서『노동 운동은 산업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구체적 수단이지만 최근의 악성·장기분규의 근원에는 당사자 아닌 외부세력이 개입되어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며『외부세력은 정치적 목적이나 좌익세력의 체제 전복수단으로 노사문제를 이용, 변질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재야 상담소 수사>
당국은 전국에 59개의 재야 노동상담소를 비롯, 2백여개의 재야 노동단체가 있어 근로자교육·노조결성·쟁의활동 등을 지원함으로써 분규가 악화되고있다는 판단을 하고있다.
그러나 문제는 공권력이 항상 노사문제에 있어서「묘약」은 되어오지 못했으며 분배의 불평등, 보수 체계의 문제 등 분규의 근원적 요인에 대한 해소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데 있다.
특히 공권력의 신뢰 유지를 위해서는 구사대 폭력·노조탄압·단체교섭 기피 등 사업주의 부당노동 행위에 대한 공권력 행사가 병행되어야 마땅하다. 이런 차원에서 합수부는 1차로 임금을 체불한 맥스테크 사장 박윤재씨(39)를 구속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노동계에서는 최근 노사분규의 전반에 걸쳐 노·사 처벌에 균형이 유지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 후속조치가 요청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지난해에도 노사분규의 50%가 4∼6월의 임금교섭시기에 집중된 만큼 지나친 위기의식을 갖기보다는 노사 양측을 합리적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당국의 조정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노동 전문가들은 재야노동 상담소 등 노동단체가 크게 늘어난 원인에 대해 근로자들의 불만을 수렴하거나 노동 문제에 대한 교육을 담당할 중립적인 기구들을 정부당국이나 대학 등 공익기관들이 제대로 제공해주지 못한 데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립적 기구 필요>
정부의 이번 조치는 현실적으로 볼 때「민주」노조나 재야 노동단체, 재야 사회 단체에는 민주세력 탄압으로 받아들여 질 것이기 때문에 근로자 등을 자극시켜 자칫 과격화하게 할 소지도 없지 않아 당국의 융통성 있는 대처가 요망되고 있다.『이번 사태와 관련, 제반 민주세력과의 강력한 연대투쟁으로 노 정권 퇴진에 나서겠다』는 전국 노동법 개정 및 임금인상투쟁본부나,『위기의식을 느낀 현 정권이 노동운동 탄압에 나서고 있으나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는 전민련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며, 노사 모두는 지난날의 호란스러웠던 경험을 교훈 삼아 서로 한 발짝씩 양보하는 마음가짐으로 이 고비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김 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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