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민노총 거리두기? 故김용균 분향소 철거 공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시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의 광화문 시민분향소를 철거하라는 공문을 24일 보내자 민주노총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민노총에 "광화문광장 무단점유하고 시설물 설치" #2012년 쌍용차분향소 때는 서울시가 나서 철거 제동 #서울시 "행정 절차 안내한 것 뿐, 강제철거 의도 없어"

서울시가 24일 민주노총에 보낸 김용균씨 광화문 분향소 자진 철거 요청 공문. 김용균 시민대책위 제공.

서울시가 24일 민주노총에 보낸 김용균씨 광화문 분향소 자진 철거 요청 공문. 김용균 시민대책위 제공.

서울시와 민주노총에 따르면 서울시는 이날 오후 4시30분쯤 민주노총 앞으로 ‘광화문광장 무단 시설물 자진 철거 요청’ 공문을 보냈다. 서울시는 공문에서 “광화문 광장을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광장 사용허가 신청서를 사용하려는 날의 60일 전부터 7일 전까지 시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광화문광장을) 무단점유하고 시설물을 설치해 광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설물이 설치된 17일부터 철거 시까지 무단 점유에 따른 변상금이 부과되며, 자진 철거하지 않을 경우 행정대집행 등의 조치로 강제 철거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에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는 즉시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시의 자진 철거 건은 박원순 시장이 분향소에 조문을 와서 밝힌 입장과 정면 배치되는 이중적인 태도이며, 시민대책위는 이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서울시는 공문에 고인의 사망에 대한 애도와 추모는커녕 변상금과 행정대집행 운운하며 전 국민적 추모 물결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자진 철거 공문 발송 철회 ▶유족에 대한 사과 ▶사망 사고 관련 진상규명을 위한 적극 협조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실제 앞서 박 시장은 고 김용균씨 사망사건을 구의역 사고와 비교하며 추모 입장을 밝혀왔다. 박 시장은 지난 18일 오후 광화문 분향소에 직접 조문을 와 “구의역 사례와 같다”고 평가한 뒤 “서울시는 지난 구의역 사건을 적극적으로 당사자들과 조사해서 해결하려 노력한 바 있는데 (진상규명에) 협조할 것이 있다면 협조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박원순 서울 시장이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고 김용균씨 시민분향소에 방문해 헌화를 하고 있다. 김용균 시민대책위 제공

박원순 서울 시장이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고 김용균씨 시민분향소에 방문해 헌화를 하고 있다. 김용균 시민대책위 제공

또 분향소 조문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용균씨의 빈소에 다녀왔다. 이 참담한 죽음 앞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차마 입조차 떨어지지 않았다”며 “다시는 ‘죽음의 외주화’ 앞에 우리의 청춘들이 방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번 공문 발송을 두고 일각에서는 서울시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터져 나온 신고용세습 의혹 사건에서 ‘서울시장이 민주노총에 휘둘린다’는 비판이 일자 "민주노총과 거리를 두는 제스쳐를 취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됐다.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원칙에 입각한 행정 처리를 진행함으로써 ‘민주노총의 서울시’라는 비판을 상쇄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지난 2012년 서울 남대문경찰서와 중구청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설치된 쌍용자동차 노조의 불법 분향소를 철거하려 하자 중구청에 긴급회의를 요청해 제동을 걸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계 관계자는 "당시의 대응과 비교하면 고 김용균씨 분향소 철거 공문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창옥 서울시 광장관리팀장은 "해당 분향소는 미리 광장 사용 허가를 받지 않아 행정상 불법 설치물이다"면서 "설치 당시부터 불법 시설물에 대한 행정행위를 공지했고 대책위 측도 이같은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해당 공문에 대해서도 "광장을 무단 사용한데 대해 자진 철거를 안내한 요청문일 뿐"이라며 "이를 두고 시가 강제철거를 집행하려 했다는 대책위 반응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형수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