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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의료와 세상

고압산소치료기가 필요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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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교수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교수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과 여행을 갔던 고등학교 학생들 세 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졌다. 꽃다운 나이에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학생들의 명복을 빈다. 그런데 이런 후진국형 사고가 계속 일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사고가 일어났을 때 대처할 수 있는 의료시설 또한 문제가 있다.

일산화탄소 중독에는 챔버 안에서 높은 압력의 산소를 주입하는 고압산소치료가 필수적이다. 1980년대만 해도 겨울철 연탄가스 중독 사고로 인해 300여개 병원들이 고압산소치료기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설을 갖춘 의료기관은 전국에 22곳밖에 없다. 더구나 이러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다수 환자가 이용할 수 있는 다인용 시설은 9곳밖에 없고, 서울에는 하나도 없다.

그 이유는 연탄 난방이 줄어들면서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결국은 낮은 건강보험 수가 때문이다. 현재 고압산소치료에 주는 건강보험 수가 최대 10만원으로는 산소 값도 나오지 않으며, 게다가 하루 1회 치료만 인정하고, 수가를 인정하는 대상도 매우 제한되어 있다. 이 치료기에는 여러 명의 의료인력이 붙어야 하고, 의사가 모니터링을 하면서 때로는 함께 들어가기도 해야 하는데 인건비도 빠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고압산소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단지 가스 중독 환자만은 아니다. 해녀나 스쿠버다이버 등 잠수병을 앓을 수 있는 사람들의 치료는 물론 색전증이나 두개골내 농양, 특히 당뇨발이나 난치성 궤양 등과 같은 흔한 질환의 치료에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래서 연탄가스 중독이 거의 없는 미국에서 1000개 이상의 고압산소치료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지인인 의사로부터 전공의 시절 제작한 지 수십 년이 지나 고물이 다 된 고압산소치료기를 식은땀을 흘리며 운영했던 경험을 들은 바 있다. 고압의 산소가 주입되는데 제대로 정비가 안 되면 대형 참사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제야 무슨 대책을 내놓는다고 분주하지만, 그 대책이란 것이 학교에 집중되어 있지 정작 의료기관의 모습은 돌아보지도 않는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후진국형 사고를 겪어야 하나. 더욱 답답한 것은 의료기관들이 이렇게 침몰하고 있는데도, 현장에서 계속 비상벨이 울리고 있는데도, 못 들은 척 하고 있는 정부 당국이다.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