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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 캐슬’에 비친 입시 광풍, 웃픈 현실 그대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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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호 10면

 드라마 ‘SKY캐슬’의 한 장면. 딸을 서울대 의대에 합격시켜달라는 주부 한서진(염정아ㆍ왼쪽)의 의뢰를 받은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ㆍ오른쪽)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사진 JTBC]

드라마 ‘SKY캐슬’의 한 장면. 딸을 서울대 의대에 합격시켜달라는 주부 한서진(염정아ㆍ왼쪽)의 의뢰를 받은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ㆍ오른쪽)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사진 JTBC]

“걔, 학종(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의대 합격했어요. 내신관리는 어떻게 했는지, 자소서엔 뭘 썼는지, 봉사활동과 동아리는? 그 포트폴리오가 절실하게 필요해요.”
“당신같은 학력고사 세대와는 다르다고요. 하다못해 라면 하나를 끓이는데도 설명서가 붙는데 어떻게 대학을 가는데 전략을 안짜?”

드라마 'SKY캐슬' 바라보는 교육계의 다양한 시선 #엄마매니저와 입시코디의 콜라보 현실 잘 그려내 #불신받는 학종 제도 개선으로 이어져야 목소리도

화제의 드라마 ‘SKY캐슬’(JTBC)의 대사다. 대한민국 상위 0.1%라는 극중 엄마들은 자식들을 서울대 의대에 합격시키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처절한 입시전쟁을 치른다. 억대 보수를 받는 입시 코디네이터의 철저한 스펙관리 하에 수험기계로 사육되는 아이들의 모습은 부정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이 자녀 입시를 좌우한다는 농담같지 않은 농담이 고스란히 대사로 옮겨질 정도로 드라마는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 강남엄마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드라마에 대한 감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정도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사교육 실상을 이토록 실감나게 드러낸 드라마가 있었던가.
그래서 사교육 현실에 밝은 교육관계자들에게 물었다. ‘드라마가 얼마나 개연성이 있는지’‘드라마가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학종에 대한 불신, 대치동이란 특수한 공간의 사회적 의미 등 입장에 따라 답변은 달랐지만,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드는 건 학종으로 대표되는 입시 광풍의 웃픈(웃기고 슬픈) 현실을 빼다박았기 때문”이라는 포인트에는 모두 공감했다.

▶이재진 대학미래연구소장(교육 컨설턴트)

이재진 대학미래연구소장

이재진 대학미래연구소장

"학종은 감잡을수 없는 치킨게임…의대입시 광풍을 잘 반영"  

“드라마가 현실과 다르지 않다. 학종은 독서ㆍ봉사활동ㆍ수행평가ㆍ탐구활동 등을 평가하다보니 제3자가 개입할 여지가 크다. 정성평가다 보니 성적 좋은 애가 떨어지고, 낮은 애가 합격하기도 한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평가다. 선발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맹점을 이용해 드라마의 입시코디 김주영(김서형)처럼 컨설팅해주며 잇속을 차리는 사람들이 있다. 의대에 가기 위해선 이런 저런 서류와 스펙이 필요하다며 모든 걸 설계해준다. 의대 합격생들을 만나보면 실제 그런 준비를 했다더라. 입시코디들이 타워팰리스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다. 드라마 설정처럼 예금잔고 20억원 이상의 VVIP고객들에게 그런 컨설팅을 해주는 은행도 있다고 들었다. 학종은 치킨게임이다. 무엇 때문에 떨어졌는지, 얼마나 준비해야 붙을 지 알 수 없으니까 다른 애들보다 새롭고 독특한 걸 준비해야 한다는 욕구가 강하다. 도무지 감이 안 서기 때문에 학부모ㆍ학생 입장에선 뭘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부족한 게 있지 않나 늘 불안하다. ‘작년에 서울 S고 전교 10등이 학종으로 서울대 의대에 붙었다’는 등의 소문이 돌면 더욱 불안해진다. 전교 1등이 떨어지고 전교 10등은 합격하는 상황이니, 엄마들 입장에선 미쳐버리는 거지. 그런 불안심리 때문에 자녀를 연회원으로 관리해달라는 요구가 생겨난다. 고소득 전문직 부모들이 대부분 자녀를 의사로 만들고 싶어하는 상황에서 의대 입시가 학종으로 쏠리고 있으니, 이런 세태가 생겨나는 것이다. 게다가 부모들은 학력고사 같은 정량평가 세대 아닌가. 드라마에 묘사된 것처럼 의대 가려는 애들은 말 그대로 총성없는 전쟁을 치른다. 학종에 대한 불신, 제도를 둘러싼 교육특구와 비교육특구 간 갈등 같은 현상을 드라마가 잘 읽어냈다. ”

 ▶이범 교육평론가

이범 교육평론가

이범 교육평론가

"입시 코디와 엄마 매니저, 학종 시대에 걸맞는 영민한 설정" 

“사실에 기초해 과장과 선정적 요소를 가미한 드라마다. 드라마 내용처럼 고소득 전문직들은 자신의 사회ㆍ경제적 지위를 자녀에게 물려주는 유일한 방법이 교육이라 생각한다. 재벌은 자녀가 공부를 못해도 재산을 물려주면 되지만, 전문직은 큰 부자는 아니니까. 드라마속 공간을 현실로 옮겨오면 대치동이다. 대대로 부자가 모여사는 압구정ㆍ청담동과 달리, 대치동은 전문직 문화가 강하다. 대치 은마아파트의 경우 80년대초 분양됐는데 대학교수나 법조인, 의사 등 전문직들이 대거 입주했다. 평균보다는 훨씬 부유하지만, 아주 큰 부자는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성공도식을 자녀에게 그대로 이식하려 한다. 사회ㆍ경제적 지위를 물려주는 방법이 공부 밖에 없다고 믿는다. 드라마에서 부모들이 자녀를 서울대 의대에 보내려 혼신의 힘을 쏟는데, 사실적 근거가 있다. IMF사태 이후 고용불안정이 심해지면서, 대치동 전문직 부모들은 자녀가 자신들의 지위를 물려받는 길은 의사같은 전문직 밖에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된다. 80~90년대만 해도 서울대 의대가 대입 배치표에서 늘 톱은 아니었지만 IMF 이후 요지부동한 1등이 됐다. 전국 모든 의대의 정원이 찬 뒤에야 공대 정원이 채워지는 현상이 굳어졌다. 아빠 직업이 대부분 의사라든가, 학종 관련 입시 코디가 등장하는 극중 설정도 사회변화를 잘 반영했다. 교과만 준비하면 되던 시대에는 초고소득층 사이에 그룹과외가 있었는데, 지금은 비교과가 확대되면서 입시 코디가 필요해졌다. 입시 코디의 도움을 받는 건 강남의 극상위권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입시 코디들은 영재학교ㆍ과학고 입시에서도 활동한다. 그런 세태를 반영하니까 드라마가 화제가 되는 거다. 흥미로운 건, 극중 엄마들은 전부 전업주부다. 워킹맘이 한 명도 없다. 자녀를 전략적으로 챙겨주려면 전업주부일 수 밖에 없다. 이른바 엄마 매니저다.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전업주부)의 정보력에 드라마는 입시 코디를 추가했다. 학종시대에 걸맞는 선택이다. 전업주부와 입시코디의 콜라보(협업). 참으로 웃픈 현실 아닌가. ”

드라마 'SKY캐슬'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 [사진 JTBC]

드라마 'SKY캐슬'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 [사진 JTBC]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연구소장(입시전문가)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연구소장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연구소장

"블랙코미디 소재가 된 각박한 한국입시… 우울해질 수 밖에" 

“드라마가 전반적으로 현실에 토대를 뒀다. 입시 코디의 경우 비용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로 꽤 많다. 코디보다는 컨설턴트라 불리는데, 비용은 연간 몇백만원 단위다. 억대라는 건 드라마의 과장이다. 역할도 드라마처럼 모든 걸 다해주진 않지만, 성적 관리해주고 동아리 활동 짜주는 등 상당 부분 설계를 해준다. 서울대 의대가 입시의 최정점에 있다는 건 상식이다. 돈 있는 집은 의대에 열광한다. 아니, 목숨을 건다. 계속 의대만 지원하는 애들도 많다. 의사는 눈 보이고 손만 안떨리면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라 하지 않나. 최고 인기 전문직이다. 드라마에서 의사 아빠가 자식을 어떻게든 의사로 만들려 하는 건, 현실을 빼다박았다. 현장에선 학종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한데 그런 것도 드라마에 반영됐다. 블랙코미디 드라마의 소재가 될 만큼 한국입시가 각박해진 거다. 우울해질 수 밖에 없다.”

'SKY캐슬'의 한 장면. 서울대 의대 진학을 위해 학생 학부모 모두 지옥같은 전쟁을 치러낸다. [사진 JTBC]

'SKY캐슬'의 한 장면. 서울대 의대 진학을 위해 학생 학부모 모두 지옥같은 전쟁을 치러낸다. [사진 JTBC]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입시전문가)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

"드라마 더 화제 돼서 문제 많은 학종제도 개선에 영향 미쳐야" 

“자녀의 스펙관리 같은 부분이 너무나 현실감있게 묘사됐다. 작가가 현장조사를 꼼꼼히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극중 묘사된 대치동 문화를 딴나라 일로 치부하거나, 무조건 배척할 게 아니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 그런 문화가 만들어졌는지, 왜 그런 광풍이 부는지 사회적으로 고민하고 공감대를 쌓은 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핵심은 불신이 팽배한 학종이다. 워낙 문제 많고 말이 많다 보니, 수험생·학부모가 아닌 일반 시청자들도 드라마에 몰입되는 것 아닌가. 그만큼 학종에 대한 불만이 차올랐다는 것이다. 불투명, 불공정, 비리 등 학종의 문제점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교육특구, 비교육특구 할 것 없이 다 불만이다. 학종 때문에 성질난다는 사람도 엄청 많다. 드라마가 더욱 화제가 돼서 문제많은 학종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고, 제도 개선에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김현정 디스쿨(대치동 학부모 교육커뮤니티) 대표

김현정 디스쿨 대표

김현정 디스쿨 대표

"대치동 학부모, 신분상승 욕구 강한 한서진에 감정이입할 것" 

“교육 때문에 대치동으로 이사 온 회원들이 많기에 드라마에 대한 관심과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높다. 대치동에서 실제 쓰는 용어, 과목별 접근법 등이 무리없이 대사로 처리됐다. 중간고사 끝난 뒤 과목별로 코칭회의 하는 장면은 정말 리얼했다. 컨설팅 비용 등 과장된 면이 있지만, 회원들이 공감하며 보게 만드는 건 작가의 역량 아닐까. 개연성 있는 소재의 블랙코미디지만, 마냥 편한 눈으로 볼 순 없더라. 드라마에 묘사된 것과 달리, 대치동의 실제 모습은 더 소박하다. 돈 엄청 많고 정보까지 풍부하면, 굳이 여기에 올 필요가 없다. 부족한 게 있기에 여기 와서 서로 공유하고 나누는 거다. 여기 사람들은 자식의 대학입시가 삶의 최우선 순위다. 자녀 교육에 대한 욕구가 부나 명예, 자기성장 같은 욕구보다 앞선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게 자신의 임무이자 욕망이다.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정보를 찾고, 공부하고, 노력한다. 자식이 대학에 가도 수강신청을 돕고 진로까지 코디해주는 분들도 있다. 자식 교육을 위해 열심히 사는 분들이 많은 곳으로 대치동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이곳 대치동에서는 신분상승 욕구 때문에 과거를 부정하고 인간적 모멸까지 감수하는 한서진(염정아) 캐릭터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대치동 사람들이 자신들의 얘기를 거부감 없이 보게 만드는 게 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SKY캐슬'에서 자식을 서울대 의대에 보내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전업주부 한서진(염정아) [사진 JTBC]

'SKY캐슬'에서 자식을 서울대 의대에 보내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전업주부 한서진(염정아) [사진 JTBC]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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