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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장규칼럼

부메랑이 된 '세금 폭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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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선거는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여당의 패배는 예상됐다기보다 차라리 예정됐던 것이었다. 여당 스스로도 너나 할 것 없이 "패배는 기정 사실이고, 제발 싹쓸이당하는 것만 면하게 해 달라"고 애걸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아무리 지방선거였기로서니 참으로 이상한 선거요, 희한한 여당이었다. 주된 원인이 경제 실정 때문이라 한다.

어쨌든 선거는 싱겁게 끝났고,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여당의 만회작전이 주목거리다. 그러나 참여정부와 집권여당의 고난의 길은 이제부터일 것 같다. 선거 참패의 가장 큰 이유가 부동산 정책, 특히 투기를 때려잡기 위해 동원했던 세금정책 탓으로 여기고 있는데, 이걸 다시 뜯어고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갖가지 명분을 붙여 세금공세작전을 겁나게 펼쳐 왔는데, 선거에 졌다고 하루아침에 이를 뒤엎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벌써 여당 안에서부터 의견이 엇갈리는가 하면, 정부는 정부대로 일수불퇴를 선언하고 나서는 형국이다. 과연 앞으로 어찌 되는 건가.

많이들 불안해하는데 낙관적인 면도 없지 않다. 불안한 거야 어차피 늘 그래 왔던 거니까 그렇다 치고, 내 눈에는 오히려 새로운 희망이 보인다. 다름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세금 문제를 본격적으로 시비하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로소 한국의 국회의원님들도 세금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정치인들은 단골 토론 메뉴가 세금 논쟁인데, 이제야 우리도 그런 게 시작되나 보다.

사실 그동안 우리의 정치 수준은 세금정책이 뭔지도 몰랐다. 우리의 국회는 세금을 걷는 일이건 쓰는 일이건, 이를 주도하거나 참견하는 전문가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정치적 잇속이나 챙기면 그만이었고, 정부 하자는 대로 방망이나 두드리는 무더기 법 통과가 예사였다. 한 해의 나라살림을 총결산하는 예산결산을 한다는 자리에서도 정치선전만 만발하다가 끝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뜻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한국 정치에 아주 교훈적이었다. 열린우리당도 "세금 무서운 맛을 보여주겠다"며 개혁의 기치 아래 겁없이 세금 방망이를 휘둘렀던 것이 이처럼 참담한 선거 패배와 직결될 줄은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날렸던 폭탄이 U턴을 해서 자기네 안방에서 터져버릴 줄이야. 국민을 향해 으름장을 놓았던 이른바 '세금 폭탄'이 자신들한테 부메랑으로 날아와 폭발해 버린 격이다.

세금을 올린다고 꼭 표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미국은 대통령 선거는 물론이고 수많은 지방선거에서 대부분의 선거 쟁점이 세금이지만, 세금 올려 당선된 후보도 많다. 단순히 증세냐 감세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후보들끼리 세금문제를 놓고 맞붙어 납세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증세든 감세든 토론의 우열로 승부를 가린다. 물론 승부의 심판은 세금을 내는 당사자인 유권자의 몫이다. 결국 납세자를 우습게 알면 무조건 떨어진다.

세금을 올리자는 논리를 펼 때는 정말 입이 아프도록 그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납세자의 양해를 구한다. 재산세를 올리든 양도소득세를 올리든 우리처럼 와지끈 뚝딱 두 배, 세 배로 한꺼번에 올리는 경우는 있을 수도 없다. 더구나 세금 많이 내는 사람들을 좋게 봐 주기는커녕 정부가 앞장서서 협잡꾼이나 투기꾼 취급하는 식으로 사회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세금논쟁이 일상화되고 사방에서 일어나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세금 공부 제대로 안 하면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거야말로 선진국 진입의 필수 과정이다. 열린우리당은 잃은 것도 많았지만 얻는 것도 많을 것이다. 납세자를 윽박지른 대가를 호되게 치렀으니 말이다.

이장규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