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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연예인 놀이판 된 캠퍼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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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학사 가수.학사 배우라는 말이 나돌았다.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연예인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지금은 낯선 용어가 되고 말았지만 대학과 연예계.대중문화 사이엔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을 증거해 준 말이었다.

당시엔 대학생들의 연예계 진출이 조심스러웠고, 연예계가 대학과 관계를 맺는 일도 흔치 않았다. 대학생들의 연예계 진출도 학비를 버는 부업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대학에서 수용해낸 대중문화는 외국의 저항적 대중문화.언더그라운드 문화 등에 국한되고 있었다.

대학이 대중문화와의 거리를 줄이고 본격적으로 수용한 것은 90년대가 아닐까 싶다. 신세대.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사회를 휩쓸기 시작할 때 대중문화는 별다른 비용을 치르지 않고 대학으로 입성했다.

대학신문들은 대중문화의 전향성을 전하고, 영화를 평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강의실에서도 대중문화론이 넘쳐났고, 스타론(論).팬덤(fandom)을 적극적으로 토론하기 시작했다.

대학방송의 스피커에서도 민중가요가 아닌 유행가가 넘쳐났다. 대학생들의 축제도 텔레비전을 베끼기 시작했다. 학생회도 인기 연예인을 부르지 않고선 학생들을 모을 수 없다며 예전의 대동제 방식을 포기하고 텔레비전식 버라이어티 쇼를 벌였다.

대학생들의 일상이 대중문화와의 간극을 갖지 않은 채 이뤄지자 대학들도 이에 편승하여 학교를 홍보하는 전략을 펼쳤다. 각 대학들은 앞다퉈 연예계와 자신들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노력을 했다. 연예인을 선발한 뒤 그들을 내세워 학교를 홍보함은 이제 보편적인 일이 되었다.

연예인을 대학교수로 모셔오는 일도 너무 잦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텔레비전의 드라마나 시트콤의 배경으로 캠퍼스를 제공하는 일이 대학의 중요한 홍보전술의 하나로 선택된 지도 오래되었다. 대중문화에 빗장을 푼 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대학이 대중문화에 풍덩 빠져버렸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대학 캠퍼스가 사회와 격리된 채 존재할 수는 없다. 대중문화가 대학 안으로 들어와 대학생들의 일상을 구성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토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최근 대학이 대중문화와 최소한의 긴장마저 포기하고 있는 모습은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강의실에 잠입하여 한판 쇼 벌이기가 연예인에게 벌칙으로 내려지고, 대학은 자상스럽게 그 해프닝을 배려하는 일조차 발생하고 있음은 대학의 존재이유까지 생각케 하는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대학은 사회에 긴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왔다. 지적인 긴장은 물론 사회 내의 온갖 부조리를 고발하고, 변하지 않는 것들에 저항함으로써 사회로 하여금 자성하도록 하는 긴장을 제공해왔다.

민주화를 거론하면서 대학을 빠뜨릴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의 대학은 독특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대학문화가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미쳐 날마다 새롭게 하는 역할도 행해왔다. 그런 과거 때문에 사회는 아직도 대학에 대해 많은 신뢰를 보내고 천문학적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연예계.대중문화의 등을 타고 벌이는 대학 간 홍보경쟁, 인기영합 게임은 사회적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다. 나날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담아야 하는 운명을 가진 대중문화의 속성에 비추어 보면 대중문화에의 기생은 대학과 대학문화를 더더욱 황폐하게 만들 것임은 뻔한 일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대중문화와 몸을 섞어온 결과 대학은 참담할 정도로 황량한 대학문화를 대차대조표 안에서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대학이 싸구려 놀이판이 되는 것을 막아내는 온 사회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 대학과 대학문화가 황폐해짐에 대한 사회적 감시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대학 스스로 대중문화에의 기생에서 벗어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사회가 대학에 쏟고 있는 관심과 비용을 감안해서라도 얄팍한 인기영합 홍보 전술은 거둬들일 일이다. 대신 대학은 대중문화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색다른 문화 향기를 뿜어내는 생산적인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사회에 긴장을 던져주는 비판정신과 문화적 실험, 비주류 문화의 온상으로서의 대학 회복이 절실한 때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