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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유엔총회 긴장했나···김성 北대사 발언실수 해프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 인권결의안이 14년 연속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채택됐다.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의제 앞서 발언 #14년 연속 본회의 통과…전원합의 형식 #한국정부, 61개국과 함께 공동제안

유엔총회는 17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본회의를 열어 북한 인권결의안을 표결없이 컨센서스(전원합의) 형태로 채택했다.

17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이 14년 연속 채택됐다. 최정 미주중앙일보 기자

17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이 14년 연속 채택됐다. 최정 미주중앙일보 기자

지난달 15일 유엔총회 인권담당인 제3위원회에서 컨센서스로 통과됐고, 이날 유엔총회 본회의에 그대로 상정돼 논의를 시작한지 40분도 안돼 채택됐다.

그만큼 격론도, 사력을 다한 저지도 없었다.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컨센서스로 채택된 것은 지난 2012~2013년과 2016~2017년에 이어 올해로 5번째다.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사회 전반의 부정적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결의안은 주유엔 유럽연합(EU)과 일본 대표부가 작성을 주도했고, 한국을 비롯한 61개국이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우리 정부가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것은 2008년 이후 11년 연속이다.

일각에서 남북 정상회담 등을 통해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만큼 한국 정부가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에 기권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노력해 나간다는 기본 입장에서 컨센서스에 동참했다.

이번에 채택된 결의안은 지난해 결의안 문구를 사실상 거의 그대로 원용했다. 결의안은 “북한에 오랜 기간 그리고 현재도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한 인권침해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강제수용소의 즉각 폐쇄와 모든 정치범 석방, 인권침해에 책임 있는 자들에 대한 책임규명 등을 요구했다.

2014년 유엔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가 보고서에서 지적한 고문과 비인도적 대우, 강간, 공개처형, 비사법적ㆍ자의적 구금ㆍ처형, 적법절차 및 법치 결여, 연좌제 적용, 강제노동 등 구체적인 인권침해 형태가 적시됐다.

 결의안은 또 유엔 안보리가 북한 인권 상황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인도에 반하는 죄에 ‘가장 책임 있는 자’에 대한 선별적 제재 등 COI의 결론과 권고사항을 검토하고, 책임규명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가장 책임있는 자’에 대한 처벌이라는 강도높은 표현은 5년 연속 들어갔다. ‘가장 책임 있는 자’는 사실상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겨냥한 것이다.

북한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김성 주유엔 북한 대사가 관련 회의에서 강하게 반발해왔고, 이번 본회의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는 “결의안에서 제기한 인권문제는 우리나라에 전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사안”이라며 “우리는 인권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 우위에 두고 품위를 부여한다”고 강조했다. 몇몇 인권침해 사례는 탈북자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결의안 작성을 주도한 일본의 인권침해를 언급하기도 했다. 김 대사는 “전범국가인 일본이 인권을 언급하는 것이 놀랍고 우려스럽다”면서 “어떤 사과도 보상도 없는 상태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북한내 인권 이슈를 들먹이고 있다”고 강하게 톤을 높였다.

17일(현지시간) 열린 유엔총회에서 발언하는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 [사진 유엔TV 캡처]

17일(현지시간) 열린 유엔총회에서 발언하는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 [사진 유엔TV 캡처]

김 대사는 이날 지나치게 긴장한 탓에 북한인권결의안을 다루기 직전 의제에서 마이크를 잡는 해프닝을 일으켰다. 지난 9월 신임대사로 부임한 이후 첫 유엔총회이기도 하다.

북한인권결의안이 포함된 74c 의제에 발언을 해야했지만 김 대사가 갑자기 74b 의제에 발언을 신청한 것이다.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에게 발언 순서가 아닌것 같다고 지적하는 마리아 페르난다 에스피노사 유엔총회 의장(왼쪽). [사진 유엔TV 캡처]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에게 발언 순서가 아닌것 같다고 지적하는 마리아 페르난다 에스피노사 유엔총회 의장(왼쪽). [사진 유엔TV 캡처]

발언이 끝나자 본회의 의장을 맡은 마리아 페르난다 에스피노사(에콰도르)는 “지금 발언은 이 다음 의제에서 해야할 것 같다”고 가볍게 핀잔을 줬다.

이후 북한인권결의안 의제가 다뤄지자 김 대사는 앞서 한 발언을 요약해 한번 더 했다.

실질적인 제재가 가해지기 보다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큰 인권 결의안이기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일치된 목소리에 대해 북한이 받아들이는 압박감은 더욱 큰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올해 결의안의 특징은, “현재 진행중인 외교적 노력을 환영한다”는 내용이 새로 들어갔다는 점이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조성된 대화와 협상 분위기를 환영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남북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서도 “이산가족 문제의 시급성과 중요성에 주목하고, 2018년 8월 남북 이산가족상봉 재개를 환영하며,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인도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환영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최근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북한 인권토의가 5년 만에 무산된 점도 특이할 만 하다. 안보리는 2014년부터 ‘세계인권선언의 날’(12월10일)을 앞두고 북한 인권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채택해 지난해까지 4년 연속 토의를 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15개 이사국 중 회의 소집에 필요한 9개국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해 미국이 회의 소집요청을 철회했다. 북한대표부는 이날 이런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유엔 기자실에 뿌리며 회의 무산의 의미를 적극 홍보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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