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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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덴마크의 유틀란트반도 서쪽 해상에서 벌어진 유틀란트해전이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을 통해 영국의 대 함대와 독일의 대양 함대가 맞붙어 최강의 화력, 최고의 전술을 교환한 가장 큰 규모의 해전이었다.
1916년 5월31일 오후 시작하여 이튿날 새벽에 끝난 이 해전은 결국 영국함대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이 한판의 해상 대결은 그 이후 세계 외교 무대의 판도를 바꾸는 이른바「거함-거포가교」를 가져왔다.
전통적으로 영국의 전략은 바다를 두고 세워지는 것이었다. 제해권의 확보는 영국에 있어 알파요, 오메가였다.
원래 영국이 취한 해군 정책은「2개국 함대정책」이었다. 그것은 해군력 1위인 영국의 주력함이 제2위와 제3위의 해군력을 합친 것 보다 열세하지 않는 함대를 보유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바다의 왕국으로서 자신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군함을 건조하는데는 몇 가지 요건이 있다. 첫째는 무장이며 둘째는 방어, 셋째는 속력, 넷째는 내해성, 다섯째는 안전성, 여섯째는 기동성, 일곱째는 항속력이다.
임신왜란 때 위력을 떨친 거북선은 무장과 방어에서 왜선을 능가했다. 거기에 충무공의 뛰어난 전술과 전략이 가미되어 그같은 전과를 올리게 했다.
최근 한국 국방 연구원이 퍼낸『세계 해군력과 한국 해군 병력의 계량적 고찰』이란 논문을 보면 한국의 해군력은 병력 2만9천명(해병대 제외)에 함정 총 6만4천t으로 세계 18위로 나타났다. 이것은 16위인 북한의 병력 3만5천명, 함정 7만6천t보다 다소 열세하다.
그 반면 공식적으로 군대를 보유할 수 없는 일본은 해군 병력면에서는 세계 18위이지만 함정 규모로는 6위를 차지하여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훨씬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오늘날의 해군력 평가는 거함-거포시대 와는 다르다. 따라서 비록 병력과 함정에서 다소 열세하다 하더라도 충분한 훈련과 전술·전략으로 그 열세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3면이 바다인 우리에 있어 해군의 건재는 언제나 국민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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