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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어린이의 눈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북한을 방문중인 문익환 목사가 27일 평양의 학생소년궁전에 안내 받았을 때 아이들이 보인 태도와 반응을 텔리비전 화면을 통해 보고 정말 착잡한 심정을 금할 길 없었다.
어린이들이 생면부지의 남조선할 아버지를 만나 대뜸 눈물을 글썽거리며 안기는 바로 그 장면이다.
유치원생이거나 기껏해야 국민학교 1, 2학년쯤 되는 어린이들이 전혀 낯선 노인을 보고 눈자위에 물기를 촉촉하게 배게 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남조선에서 만난을 무릅쓰고 통일일 염으로 북반부를 방문, 「위대한 김일성 수령 동지」를 만난 분에 대한 한없는 경모심에서 자연스레 눈물이 우러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더구나 이들 어린이에 각인된 남조선은 어떤 곳인가. 인민들이 미제와 군사폭압정치에 시달려 신음하고 있고 특히 남조선 아이들은 깡통을 차고 구걸하러 다닌다는 곳이 아닌가.
그런 곳에서 20여 개의 수식어가 붙는 수령동지를 만나 통일을 논의하러 온 외곬의 통일일꾼이니까 감격해 흘린 눈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 이해가 과연 적절한 것일까.
한마디로 말해 그 아이들의 행동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국민학교 1, 2학년쯤의 순진무구한 어린이가 통일의 개념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으며 또 설령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처럼 열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에 대한 깊은 회의다. 인성으로 그게 가능하겠는가.
깜직하다 못해 앙증스런 감마저 풍기는 그 어린이들의 행위는 무얼 뜻하는 것일까. 북한은 좋게 말하면 인간성 개조에 성공하고 있는 듯이 보였고, 나쁘게 말하면 인간성 말살의 생생한 증거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어느 경우든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을 그 정도로까지 「관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끊임없는 외길 주입식 교육이외에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남조선인민은 미제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는 군사파쇼세력의 폭압정치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어버이 수령동지의 교시를 받들어 남조선을 해방시켜야한다는 해방논리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한평생 인성의 고양을 위해 성직자생활을 해온 문 목사가 그 어린이들의 물기 젖은 맑은 눈을 어떻게 받아 늘였을지 자못 궁금하다. 【이수근<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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