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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도약"이냐 "사양화"냐 갈림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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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수출견인차의 역할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일부에서 우려하는 대로 사양산업화의 길을 걸을 것인가.
올해 섬유 업계는 이 두 갈림길에 서 있다.
원래 섬유는 저가품위주의 다량생산·수출로 경제성장 초기 수출드라이브 정책의 선봉장 역할을 맡았던 산업이다.
7O년까지만 해도 총 수출 가운데 석유의 점유율이 30%이상이었으며 71년 한해만도 무려 42%의 수출 점유율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88년 국내수출 1위의 자리를 전자업종에 빼앗기는 등 최근 들어 섬유수출은 그 위치와 비중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지난해 섬유 총 수출은 1백41억1천만달러로 87년의 1백17억2천만달러에 비해 20·4% 증가했다.

<신용상 내도 격감>
그러나 이 증가율은 86년의 24·7%, 87년의 34·2%에 비하면 둔화추세가 역력히 나타난다.
게다가 올해 들어서도 2윌까지의 수출(잠정)은 17억2천2백만달러로 지난해보다 10% 늘어 난데 그쳤으며 L/C(신용장)내도액마저 2월말 현재 지난해에 비해 18%나 줄어 앞으로의 수출 전망은 더욱 흐리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미국과의 통상마찰에 따른 급격한 원화 절상과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 이제 더 이상 저임노동을 밑천으로 한 저가품 대량 수출체제가 지탱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섬유업종은 크게 보아 화학섬유·면방모방·직물·봉제·편직·염색가공 등으로 나뉘어진다.
총 업체 수는 기획원 광공업통계조사(88년3월)에 따르면 1만1천5백47개. 이중 화섬은 한일합선·선경·코오롱·동양나일론 등 10여개 대기업과 2백여 중소업체들이 있으며 면방은 대농·충방 등 52개사가 있다.
모방의 경우는 제일모직·경남모직 등 88개사, 직물은 동국무역을 비롯해 2천4백93개 업체가 경쟁하고 있는 상태다.
봉제는 전 섬유업체의 40·5%를 차지하는 4천6백87개 업체가 난립하고 있는데 여기에 고용된 노동자는 전 섬유업 고용인원외 절반을 차지한다.
편직과 염색가공업체 수는 각각 1천8백25개, 6백77개로 집계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60%가 종업원 수 5O명 미만이고 7O%이상이 자본금 규모 1억원도 못되는 영세 업체들이다..
섬유산업 연합회가 지난해 11월 조사 가능한 6천71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섬유공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37·1%(2천2백55개사)가 종업원 수 20∼49명 규모이고 14·6%(8백88개사)가 10∼19명, 8·3%(5백2개사)가 9명 이하 사업장으로 나타났다.
자본금 규모로 보아도 5천만원 미만의 소액투자 업체가 조사대상의 49·2% (2천9백88개사)에 달하며 5천만∼1억원의 자본금을 가진 업체가 22·3%(1천3백55개사)로 1억원미만 업체가 전체의 71·5%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최근의 급속한 원가 절상은 이들 영세섬유 수출업체들의 채산성을 악화시켜 도산하는 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
섬유제품 및 직물수출조합이 직계한 지난해 도산업체 수는 하청공장을 포함, 모두 3백50개사며 올해도 5백여개 사가 도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들 영세 섬유수출업체들이 대량 도산할 경우 더욱 크게 문제되는 것은 피고용자들의 실업문제.
지난해 섬유업체 전체 고용은 77만1천명(기획원조사)으로 전 제조업 고용의 16%를 차지했다.
이는 제조업 피고용자 6명중 1명이 섬유 업에 종사하는 셈인데 단일업종으로서는 섬유가 최대의 고용흡수 능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섬유업체의 도산이 잇따를 경우 우리경제의 실업문제는 심각해지는 것으로 볼수 있다.
원화 절상과 함께 섬유업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은 세 가지로 지적된다.
첫째는 미국등 선진국의 수입규제.
현재 섬유무역은 다자간 섬유협정(MFA)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4기(87∼91년)를 맞고 있는 MFA에 의해 수출입국은 양국간 상무협정에 따라 쿼타량을 정하고 있는데 최대시장인 미국에서는 그 동안의 판매자 쿼타 방식을 구매자 쿼타 방식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쿼타 방식을 전환>
구매자 쿼타방식이 되면 미국 바이어들이 수입권한을 쥐게 되어 그만큼 우리 섬유제품의 대미 수출이 어려워지는 셈이다.
게다가 MFA기간이 만료되면 이를 폐지하고 자유경쟁에 입각한 GATT체제로 복귀할 가능성도 있어 이렇게 되면 중국·대만 등 경쟁 상대국에 시장을 뺏길 우려도 있는 것이다.
두번째는 후발 개도국의 맹추격을 들 수 있다.
미국시장만 해도 지난 80년 한국의 시장 점유율이 12·8%, 중국 4·5%였던 것이 87년에는 12·7% 대 9·5%로 그 격차가 점차 좁혀지고 있다.
일본 시장의 경우도 지난84년 전국의 시장 점유율이 18·5%로 한국의 16%를 앞지른 뒤 역전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세번째는 섬유업계의 상대적 저임금과 노동 환경이 연약해 점차 인력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87년의 경우 제조업 평균 임금은 32만8천6백앤원인데 비해 섬유 업 총 고용의 절반을 차지하는 봉제업의 평균 임금은 22만4백28원으로 나타났다. (기획원자료)

<75개사 해외진출>
또 월 작업일수를 보더라도 제조업 평균이 25억인데 비해 섬유업계는 26·2일로 나타나 노동 환경 역시 제조업 평균보다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기능공 등이 상대적으로 노동환경이 좋고 임금을 더 받을 수 있는 전자 및 서비스 업종으로 전환하고 있어 숙련기술자의 확보가 어려운 것으로 지적됐다.
이러한 어려움 들을 극복하기 위해 섬유업계는 해외로의 생산기지 이전에 주력하고 있다.
섬유산업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까지 해외진출 업체는 모두 75개 사로 투자액은 4천7백53만1천 달러로 나타났다.
이는 87년에 비해 각각 47·1%, 78·3%가 늘어난 것이다
이와 함께 섬유업계는 올해 2월 정부와 협의,「섬유산업구조 고도화 5개년 계획」을 확정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계획은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화 ▲기술수준의 이탈리아·서독 수준으로의 제고 ▲세 계 최고 브랜드이미지 구축 등에 주력, 오는 2000년까지는 수출액 3백억 달러를 달성해 세계1위 수출국을 지향한다는 야심만만한 구도로 되어 있다. <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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